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킨다

영화와 뮤지컬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막달라 마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라고 제목의 뮤지컬이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여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생하게 기억되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시몬이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였는데, 대부분이 소위 거들먹거림의 대표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좇아 들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창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당황하여 말을 못하고 있는데 단 한 분 예수님만큼은 막달라 마리아를 편안하고도 친근하게 대해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무척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를 아주 몹쓸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하였으나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대해 주시던 예수님의 눈은 잔잔하면서도 매우 강렬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통해 사랑에는 유연함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율법적인 종교인들을 왜 그렇게 비판하셨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4)라고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얼핏 들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정결음식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기초한 이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관한 규정입니다.

짐승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는 것과 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소는 굽이 갈라져 있고, 새김질을 하고 있으니 식용으로 가능하지만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쪽발이 아니므로 먹을 수 없습니다. 곤충도 이 음식법에 따르면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 가운데 뛰는 것들 즉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파리, 모기, 벌, 개미 같은 류의 곤충은 절대 먹을 수 없습니다. 아니 먹을 수 있기는 커녕 만일 그들의 사체를 만진다면 그들은 부정하게 되어 정결의식을 거쳐야 합니다.

이 때문에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은 반드시 세마포 천을 소유하여야 했는데 이는 포도주나 포도즙에 빠진 곤충들을 걸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포도즙에 벌, 개미, 파리 등과 같은 부정한 곤충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포도즙을 담는 통에 세마포 천을 씌웠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각자의 천을 가지고 다니면서 혹시 걸러지지 않은 곤충들을 걸러내어 포도주를 마시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보신 예수님이 “너희들이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고 말씀하신 배경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하루살이도 걸러낼 만큼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듯 하나 그 율법조항을 지키려고 율법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외면해 버리는 모습이 마치 낙타는 모른 채 삼키버리는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또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세상과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마음 때문에 세상을 차별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향해 편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이는 결코 주님이 바라시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사랑이셨고 그 사랑은 사람에게 대해서 절대적으로 유연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유연한 마음,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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