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도 우상이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도 우상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현대판 우상들이 있어 신앙을 좀 먹게 하고 하나님을 섭섭케 하고 있으며 징벌의 대가로 질병이 끊이지 않고 이름 모를 질병이 나날이 늘고만 있다.

생각컨대 우상은 크게 유형적 우상과 무형적 우상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이는 우상과 보이지 않는 우상이 있는데 보이는 우상은 형상이 있어 대개 타파하고 배격하며 물리치려 노력이라도 하지만 무형적 우상은 보이지 않아 우리 마음을 통해 은밀히 침투하여 우리 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 강요는 강압적으로 부딪혀 왔기 때문에 믿음이 약한 자들은 타협적인 신앙으로 신사참배에 가담했으나 이를 배격하여 대항한 순교자들의 피 값은 자유와 해방을 이 땅에 가져오게 하였다. 이러한 신사참배는 무형적인 우상이면서도 유형적 우상보다 더 뚜렷하게 강압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였지만 오늘날 강요도 없는 무형적인 현대판 우상들이 기독교인들 생활 속에 스며들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있다. 국가 행사의 식순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또 상가 조문 시 망자에 대한 묵념 등이 기독교인들에게 아무 부담 없이 행하여지고 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우상숭배와 아무 관련이 없을까? 나는 어느 날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도 언젠가는 우리가 타파하거나 개선하여야 할 일종의 우상이요, 마음으로 범하는 죄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하여 안방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파고드는 다양한 미신적 무속문화야말로 아무런 방비 대책 없이 기독교인들의 생활에 은근히 스며들고, 신문 잡지에 운세를 점치는 등 다양한 토속문화를 통해,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도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현대판 우상들 앞에 우리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다함께 자각해 보자. 시대의 파순꾼들이 새벽을 깨워야 한다. 잠자는 신앙을 일깨워 우상을 깨뜨리고 자손 천대에 까지 복을 받는 나라를 이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누가 먼저 입을 열며, 주를 위해 누가 갈꼬…, 현대의 이사야는 어디에서 무엇을 할꼬…, 모두가 다 짖지 못하는 벙어리라면 성결인들이 이때를 위한 파수꾼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다.

성경은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마 5:37)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우상이나 세상과 타협하지 말며 불의에 가담치 말아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마 16:12)과 발람의 교훈(계 2:14)을 삼가야 할 것이며 오늘날 현대판 우상 유전을 지키는 죄(막 7:8~9) 역시 삼가야 할 것이다.

아사 왕(대하 15:1~9)은 우상을 깨뜨려 제거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하나님이 저를 도와 함께 하심으로 부강한 나라로 태평성대를 이룬 것 같이 우리도 다가온 새해를 각별한 기도와 일치단합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통해 선진국을 이룩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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