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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샤워실의 바보들
[688호] 2009년 01월 10일 (토) 00:00:00 이정희(CBS보도국 부장) webmaster@kehcnews.co.kr

바보가 샤워실에 들어갔습니다. 샤워 꼭지를 틀었더니 찬 물이 나왔습니다. 바보는 조금 기다리면 될 텐데 가장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샤워 꼭지를 급히 돌렸습니다. 바보는 뜨거운 물이 나오자 또 깜짝 놀라 찬 물이 나오도록 꼭지를 반대로 틀었습니다. 찬 물, 뜨거운 물… 바보는 어리석은 ‘꼭지 틀기’를 끝없이 반복합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만들어 낸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란 우화입니다. 바보는 자신의 샤워 꼭지 조작과 그 조작의 결과 사이의 시차를 무시한 채 순간순간의 온도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합니다. 프리드먼의 우화는 경제정책 입안자와 추진세력의 즉흥성과 무능을 꼬집은 것이지만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보면 경제는 물론 정치판에도 샤워실에 들어온 ‘바보들의 행진’을 닮았습니다.

MB정부 초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편답시고 고환율 정책을 폈다가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무역적자만 키운 것이 대표적인 바보 정책이었습니다.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정부 경제팀의 바보들은 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회생 사이에서 이리 저리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도 바보들이 득실댑니다. 연말 임시국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85개나 되는 이른바 MB개혁법안은 야당의 점거 농성으로 상정조차하지 못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결사항전을 벌였고 여당은 전투경찰까지 동원해 강제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고는 서로가 ‘폭력집단’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르기가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경쟁 국가들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피아 구분 없이 밤이 맞도록 골몰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정치권의 싸움을 보면 4년 전과도 유사합니다. 17대 국회 초반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 우리당은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안 등 4대 개혁법안 통과를 강력히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법사위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며 법안 상정을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당시에도 여당은 야당을 향해 떼를 써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언젠가 국제통화기금, IMF는 대한민국의 정부를 두고 ‘유비퀴터스 핸드(ubiquitous hand)’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가 경제 구석구석까지 모든 것을 간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시대, 세상이 점차 하나의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되는 요즘, 정부뿐만이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도 유비쿼터스 핸드의 반열에 속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보들이 그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습니다.

못 배우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바보라면 순박한 맛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웠지만 교만하고 균형 감각이 없으면서도 자기 욕심과 신념이 강한 권력자들이 설치는 세상에서는 백성들은 너무 고달픕니다. 그들이 샤워실의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리는 순간 나라는 마치 세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긴 환자처럼 균형을 읽고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원전 8세기 이사야 선지자는 쓰러진 조국 유다를 향해 외쳤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 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사 1:10)”.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만큼 살게 된 조국 대한민국이 다시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을 맞기 전에 권력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국민들이 먼저 깨어서 기도하고 그들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감시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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