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6:6-10
목회를 하다보니 ‘헌신'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설교할 때마다 헌신하라고 외쳐대고 있습니다. 헌신예배를 너무 자주 드리니까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 헌신에 대한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헌신은 “자기 자신과 헌물을 조금도 아낌없이, 그리고 기꺼이 관대하게 주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향한 헌신은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은 매일 강조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매일매일 헌신을 다짐하며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더욱 닮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관제로 드리는 마음으로 헌신했습니다.
바울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빌 2:17)고 말했고, 순교 직전에는 디모데에게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딤 후4:6)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산 제사로 드려 순교하였습니다.
헌신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면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부름과 다르다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시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인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 무시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무시아에서 고민을 하다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비두니아로 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열정적인 헌신의 자세로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마게도냐였습니다. 결국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에 이르러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헌신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항상 먼저였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편하고 안락한 것을 생각하며 헌신을 다짐합니다.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환경을 생각하면서 “제가 그곳에서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밤을 새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외면한 채 자신의 욕망이 담긴 헌신을 허락해 달라고 목매어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나의 헌신을 앞세우기 때문에 아골 골짝 빈들에는 복음 들고 가는 자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의 열정적인 헌신을 앞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합니다. 헌신보다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