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천 여중생 사건은 교단 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어찌 사건의 주인공 이모 목사만의 탓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방관한 공범들이지 아니한가? 신문을 통해 발표된 총회장의 통렬한 회개서신과 서울신대와 동문들의 회개의 메시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때임을 절감했다.

1960~ 1970년대만 해도 오늘 같은 일은 없었는데 지금은 왜일까? 오늘 교회의 제도와 법, 목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목자들을 무한경쟁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비인간적인 주범의 정체를 찾아 고쳐 나가야 한다.

먼저, 신학정책을 현실에 맞게 고쳐나가자.
목사들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부흥의 길이 아니다. 목회자는 해마다 수 없이 나오는데 일할 목장은 빠르게 줄어가니 남아도는 목사들은 어찌할 것인가?

6~70년대 만해도 교회 간판만 붙이면 양떼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아니지 않는가. 2000년 9월 총회 때 지금을 염두에 둔 이가 담임목사 65세 임기 단축안을 연차적으로 줄여나가자는 헌법 개정안을 상정해서 과반 득표를 했지만 통과선인 삼분의 이가 미달되어 무산되고 말았다. 이대로 간다면 이보다 더 엄청난 일이 없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때 단축법안만 통과되었더라도 우리 교단이 훨씬 활성화 되었으리라 믿는다.

아직도 기득권층의 목사들과 교회들이 우리하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것인가. 오늘날 젊은층 목사들을 보면 놀라울 만큼 똑똑하고 지식과 지혜가 성장했음을 본다. 이들이 마음껏 사역할 길만 넓혀 준다면 교회와 교단이 활력을 얻을 것이다.

둘째,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직분 장사를 말아야 한다. 총회장 이천만원, 부총회장 천오백만원, 기타 임원들 얼마, 지방회와 개교회들까지도 이런 추세로 가고 있다. 대의원들이 모여 임원을 뽑는데 돈이 왜 필요한가? 순수하고 깨끗하게 제비 뽑듯 무기명 종다수로 선출하되 흠없이 잘하면 여러 해 연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홍보나 운동이 필요 없고 평소 교회에 덕을 쌓고 인정을 받게 되면 지명도가 높아지고 지도자가 될 것이다. 총회를 축소하고 작은 총회를 만들어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말함이 아니다. 부흥회나 집회 강사로 받는 과다한 강사료는 부패가 된다. 기거하고 오가는 교통비의 후함을 말함이 아니다. 쥐어짜듯 헌금시켜놓고 반을 나누자든가 담임목사의 월 사례비 만큼을 줘야한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물론 성결을 외치는 우리 교단에는 그런 부흥사나 강사는 없으리라 믿는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하는 말씀대로 초청받은 자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대로 살 때 존경을 받을 것이고 기독교가 살아날 것이다.

우리 개신교회에도 존경받는 대표적인 목사가 계셨으면 좋겠다. 한경직 목사님이 가신 후 우리 개신교회를 대표할 목사는 누구일까? 부천사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기도해야 한다. 이제는 바꾸어 가고 빠르고 정직하게 변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기득권과 욕심을 내려놓고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법을 고치고 잘못된 관습들을 고쳐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요. 기독교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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