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 ‘평화로 가는 길’ 논의하는 국제대회 열자

“남북관계가 풀려가고 있는 게 다행이고 고맙다. 정치인들이야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도의 셈법을 갖고 따지겠지만, 그런 계산으로도 해빙이 서로 이득이 되는 모양이니 감사하다.

남북관계와 연관된 민간차원의 여러 분야에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틀이 아주 중요하다. 유엔이나 인도적인 국제 활동에서 남북관계는 이미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긴 우리나라의 일부에서나 민족 내부적인 사건으로 단순하게 인식하고 있지, 6·25전쟁 자체가 국제적인 역사 흐름의 질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2013년 8월 31일자 본 지면에 쓴 필자의 칼럼 중 일부이다. 제목이 ‘디엠지(DMZ) 평화공원의 경우’였다. 국제적인 연결망을 구성하여 디엠지 평화공원을 추진하고 이로써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 평화 분위기의 구조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불과 3년 전이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상전벽해이다.

사드 배치와 연관하여 지금 한반도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의 양대 강국 사이의 힘겨루기 상황은 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상당히 애써가며 외교적 모양새를 유지하던 양국이 드디어 대놓고 부딪치는 모양새이다. 우리나라의 고민이 깊어간다.

남북관계는 예측하기 힘들다. 어떤 상황을 예측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아서이다. 북한의 독재정권에 대하여 정보가 극히 제한돼 있고 게다가 미국이라는 요소는 이제는 종종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 작용한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일본을 다루며 대하는 것이 또 결말이며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치열한 현안 문제가 돼 있는 사드 배치와 연관하여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도 입장이 다양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기독교의 복음에 터한 본질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다. 바로 평화의 문제이다.

전쟁과 평화는 기독교 신학적으로도 오래된 논제며 중요한 주제이다. 성서의 가르침으로는 평화가 하나님의 뜻이다. 전쟁은 필요악 정도이다. 잘 알려진 히브리어 ‘샬롬’은 겨우 전쟁이 없는 상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신약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복음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다스림의 중심이 되는 시공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오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평화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 교단이 주도하는 세계성결교회연맹이 있다. 여기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평화를 의제로 삼아 논의하는 대회를 열자. 미국과 중국, 중국과 러시아, 그 사이에 끼인 남북한의 현실 상황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듣고 더 나아가서 신학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깊이 논의하고 토의하자. 강사는 국제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전체의 방향은 ‘평화로 가는 길’이다. 대회의 주제 성경구절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의미로 누가복음 19장 41~42절이 좋겠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이런 논의의 모든 준비 과정과 모임의 진행 상황을 최대한 언론에 알리고 세계성결교회연맹에 연관된 단체들이 힘을 모아 세계적인 이슈가 되게 해야 한다. 모임의 결과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한중일 삼국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민간 차원의 동북아 평화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

하나 덧붙일 것은 총회장이나 어느 사람이 자기 임기 등을 생각해서 급조하면 안 된다. 2~3년은 준비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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