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고 예술에 능한 이 시대 ‘신사임당’
자식 셋 모두 박사로 키워
문인화 등 예술에도 뛰어나
봉사와 기부 실천도 으뜸

우리나라에서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상징이다. 강원도는 강릉에서 태어난 신사임당의 얼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신사임당상을 수상하고 있다. 올해 제42회 신사임당상은 성결인 최종문 권사(대관령교회 명예 76세·사진)가 수상했다. 어진 인품과 부덕을 갖춘 훌륭한 어머니, 그림과 시 등 예술에도 뛰어난 대표적 강원여성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요즘 최 권사 같은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문인화 등 예술에 능하고, 일평생 지역사회와 교단, 교회 등에서 봉사의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남편 없이 치매 시어머니를 40여 년간 홀로 봉양했고, 그런 힘든 가정에서 자식 셋을 박사로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신사임당상을 받을 자격을 모두 갖춘 것이다. 그러나 최 권사는 “믿음 안에서 성실히 살았을 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 권사는 대관령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고 김병래 장로를 만나 결혼하고 2남 1녀를 낳았다. 남편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가난했던 살림도 일으켰다. 남편은 결혼 후 대학을 가고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동안 최 권사는 살림과 농사,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런데 남편이 도의원 선거를 출마 해 선거운동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졸지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는 정신 줄을 놓았다. 최 권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가장 힘든 시기에 그녀가 의지한 것은 신앙이었다. 12살부터 대관령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최 권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했다. 남편 사별 후에 봉사와 선교에도 매달렸다. 평소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남편의 유지를 잇는 일이기도 했고, 그것이 큰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위안이 됐기 때문이다.

최 권사는 서울신대에 장학금 1억 원의 통큰 기부를 했다. 서울신대 후원회에도 1000만 원을 헌금하고 매월 30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 돈이 없어 굶는 신학생을 몰래 돕는 일도 지금까지 해왔다. 특히 2007년 대관령교회에 교육관 건축용지를 헌납하기도 했다. 남편이 남긴 가장 값진 땅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바쳤다. 세 자녀가 해외 유학까지 하며 박사와 목사,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가장 값진 감사의 예물을 드린 것이다. 이 땅에는 지금 나눔채가 건축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눈마을 작은도서관 후원회장을 맡고 있으며 도암초교와 대관령 유치원에서 문인화를 지도하고, 대관령 노인대학에서 사군자를 강의하는 등 예술적 재능을 여러 곳에 기부하고 있다.

최 권사는 뒤늦게 문인화로 예술세계에 입문했지만 서예와 문인화 부분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운곡서예문인화대전 우수상, 통일기원 부체예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현대서예문인화대전 특선 등 각종 대회에서 여러차례 수상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손재주를 주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녀가 문인화를 시작한 것은 선교를 위해서이다. 어와나선교회 선교사들에게 부채를 선물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작품을 출품할 때마다 상을 탔다. 현재 그녀는 신사임당 미술대전, 강원도미술대전, 강릉단오제서화대전 초대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최 권사는 특히 2년 전 뇌신경마비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경험도 했다. 이후 최 권사는 새로운 생명을 선물받았으니 받은 사랑을 오래도록 되돌려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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