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교회, 고난 중에도 복음사명 감당”

제8회 한일성결교회 공동역사연구회 포럼이 지난 7월 11~14일 제주도 일대에서 열렸다. ‘해방 후 한·일 성결교회’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한국과 일본 신학자와 목회자 20여 명이 참가했다.

‘해방 직후 한국성결교회의 타임라인’을 주제로 발제한 박찬희 박사(서울신대)는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주요 이슈와 교단정책 등을 발표했다. 박찬희 박사에 따르면 1945년 해방 후 성결교회는 ‘교단 재흥을 위한 7개 강령’을 세우고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7개 강령은 ‘신생, 성결, 재림을 성경해설의 요제로 할 것’,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설립’, ‘영적 무한발전 도모’, ‘일반 신도의 신앙양심에 기초한 회의제도’,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계발적인 신앙 지도’, ‘전도 주력과 실제 생활에서의 모범’ 등이었다.

그는 “당시 발표된 7개 강령은 성결교회의 중심 전도표제로서 사중복음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며 “교파주의 배격, 대의제도 선택, 실천적 신앙 독려, 전도 강조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성결교회는 1947년 1000개 교회 신설운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교단 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답보상태에 머물게 된다. 수많은 교회가 파괴되고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순교하거나 납북되었다.

박 박사는 “1953년 휴전협정 타결 전까지 성결교회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지만 전쟁 중에도 복음사역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1951년 부산 수정동교회에서 제6회 총회를 열고 피난교회 수습문제, 교역자 구호대책 마련, 피난신학교 개교를 결의했으며 다음 해에는 제7회 총회를 개최하는 등 교단의 명맥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또 1960년대는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지평이 넓어진 시기였다. 1968년 조종남 박사가 본격적으로 웨슬리신학을 소개하며 성결신앙의 지평확대와 신학정립을 이뤘다. 그는 “해방 이전이 외부(일제)에 의해 어려움을 겪은 시기였다면 이후는 내부의 문제로 혼란과 격변을 겪은 시기였다”며 “그럼에도 위기에 맞서 믿음을 지켰던 선배 신앙인들의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장금현 교수(세계사이버대학)가 ‘한국성결교회 리더십의 변화’, 최재락 교수(서울신대)가 ‘성결교회 여성 사역에 대한 고찰’,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한국 민족주의와 기독교’를 주제로 발제했다. 일본에서는 가미나카 사카에 목사(역사편찬위원) 나이토 타츠로 목사(역사편찬위원장) 콘다 쇼이치 씨(화해위원)가 ‘패전 전후의 한국성결교회 관련사항’, ‘전후의 OMS와 일본 홀리네스 교단의 관계’, ‘일본의 내셔널리즘 강화와 기독교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한편 한일성결교회공동역사연구회는 2008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 성결교회의 상호 역사를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제9회 포럼은 2018년 일본 훗카이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