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목사
서울강남지방회는 아름다운 전통과 귀한 동역이 있는 멋진 지방회입니다.(有同力) 작은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일에도 온 지방회가 한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작은교회를 섬기는 일은 교회부흥확장위원회가 담당합니다.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섬기는 성지연수는 이미 1차로 2014년에 요르단, 이스라엘 성지연수를 다녀왔고, 올해 수로고운 준비를 통해 사도바울의 선교여행을 중심으로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함께 돌아보는 2차 성지연수단(단장 양정규 목사, 영동중앙교회)을 구성했습니다.(自遠方去) 

성지연수는 6월 13일 출발해서 24일 돌아오는 일정이었고, 목사님과 사모님들로 구성된 36명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  터키 국내선 항공편으로 카이세리로 이동한 후 갑바도기아 괴레메에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공인 후 국교화된 기독교가 주는 부와 명예를 등지고 오지로 향해 기도와 말씀에 집중했던 수도사들의 발자취와 복음과 사명에 대한 귀한 대답을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수가 진행되는 동안 이슬람권은 라마단기간이었습니다. 일정 속에 있던 데니즐리 등의 도시들은 터키 가운데서도 이슬람 영향이 강력해서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낮이면 텅빈 식당과 카페 등을 보면서 라마단의 현장을 살필 수 있었고, 극심한 우상숭배의 현장을 지나는 자체가 영적전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시작으로 일곱교회를 찾았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며 느낀 것중의 하나는 사도바울의 열정과 탁월함입니다. 지역과 상황들 속에서 복음을 변증하고, 권면하며 전도와 교회를 세우는 일과 목양의 사역을 감당한 사도바울. 그의 발자취는 목회가 무엇인지, 목양이 무엇인지, 설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질문들을 남깁니다. 

무너진 예배당들과 건물 터를 보면서 사도바울이 세우려 했던 교회는 그곳에 무너진 돌무더기가 아니라, 오늘 나를 두신 바로 이 교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발로 밟아야 떠오르는 생각들은 귀하기만 합니다.

여정은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향했습니다. 육로로 지나는 국경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생소하기도 하고, 즐거운 경험이 됩니다. 그리스 국경은 말과 낙타를 나누고, 기독교와 이슬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라고 합니다.

무서운 기세로 팽창하는 이슬람을 막아낸 그리스의 끈질긴 체력과 수고들이 새로워보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유적지에서 사도바울이 갇혔던 감옥과 채찍에 맞았을 것이라고 예측되는 광장의 자리를 방문합니다. 사도바울의 발자국은 열정과 복음에 대한  바른 자세를 거듭 생각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지중 하나는 메테오라입니다. 역시 복음에 응답하며 깊은 오지로 들어가 스스로를 가두며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간 수도사들의 발자취는 먹먹한 감동이 됩니다.

메테오라 수도원이 깊은 인상으로 다가온 이유는 수도사들은 스스로를 깊은 수도원에 두었지만, 그들이 가장 깊은 오지 속에서 가장 깊은 경건성과 가장 깊은 지성으로 시대를 이끌고 복음 사역을 감당했음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수도원(Megalo Meteora)에는 현재도 여섯 분의 수도사들이 기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기와 숫자가 힘으로 보이는 착시의 시대를 살면서 깊이와 방향으로 사명을 지키고 복음을 지켜간 발자국들이 고맙기도 하고,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의 수도원보다 더 높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인문학의 중심지인 그리스를 돌아보며 사도바울은 시대정신의 가장 위에서 복음을 변증하고, 예수를 전했음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성지연수 속에서 펼쳐보는 사도행전은 각별했습니다. 성경의 절과 행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한 절 한 절에 담긴 말씀이 새로웠습니다.

사도바울이 참수당했다고 전해지는 사도바울 여정의 끝자락까지 살피며 복음, 예수, 구원, 은혜, 사명, 충성의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주신 자리에서 내 발로 걷는 사명과 충성이 드려야할 순종임을 고백합니다.

좋은 여행은 여행수단이나 비용이 아니라 누가 함께 가는가의 문제로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좋은 동역자들과 귀한 성지연수의 기회를 온 지방회가 한 마음으로 보내주셨고, 덕분에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不亦恩惠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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