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즈(1983.11.15)에서 ‘한 인간의 슬픔과 불행은 그의 습관의 문제이다’라는 제목으로 정신 의학계와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 길슨(Mark Gilson)은 이런 실험을 했다. 상자를 준비하고 상자 속에 오른쪽에는 웃는 얼굴을 왼쪽에는 울고 있는 슬픈 얼굴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두꺼운 종이로 가린 후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다 왼쪽, 오른쪽 두 눈을 대고 들여다보게 했다. 그 후에 물었다.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은 ○표, 울고 있는 얼굴을 본 사람은 ×표하라” 했더니 50대 50으로 답이 나왔다. “오른쪽은 웃고 왼쪽은 울더라.” 이렇게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두 그림을 보고 왜 한 쪽으로만 보인다고 대답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길슨 박사는 이것을 ‘인식의 차단(cognitive blockade)’이라고 불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인생관과 이 세상을 보는 태도에 따라 어느 한 쪽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즉 자기를 불행하게 보며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슬픈 얼굴만 들어왔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며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기쁜 얼굴만 들어왔던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건강한 마음가짐과 건강한 시각을 가지는 것,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 같은 환경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나쁜 것들만 온통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기 시작한다면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지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나쁜 점을 찾기 시작하면 나쁜 사람들만이 득실거리는 모습이 발견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들이 똑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긍정적인 시각의 두 정탐꾼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민14:7)고 말했으나 부정적 시각의 열 명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민13:32)라고 말해 원망과 함께 백성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부정적 시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광야에서 전부 멸하셨다. 그러나 긍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과 함께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은총을 주셨다.

성공적 인생을 위해서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사회가 어렵고, 구조조정, 경기불안정, 취업대란, 사회 안정망이 허술한 탓에 부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듯 한 발언도 여과 없이 언론과 지도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단에서도 비난하고 비판하면 똑똑하고 정의롭고 바른 사람인 듯 여겨지는 풍토가 있는데, 자칫 그것이 습관화가 되고 굳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성경은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시109:17)라고 말씀하고 있다. 혹시 지금까지 좋은 것을 찾으려는 태도보다 나쁜 것을 먼저 보는 습관에 빠져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노력하자. 갑작스럽게 다가온 환경, 처지 가운데서도 믿음의 마음과 시력, 건강한 시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자리에 역풍이 불어올 때 더욱 더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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