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연말 세모의 어수선한 때에 매스컴을 통해 들려온 ‘존엄사(尊嚴死)’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평소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슈였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의한 존엄사’는 특별히 말기 환자들과 환자가족들 또 의료계에게는 오랫동안 논의가 되었던 주제였다.

그만큼 이 문제에 관한한 현실적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었으나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따라주지 못하여 관계된 사람들의 고통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때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존엄사’가 ‘안락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안다면 진지하게 논의하여 법률적으로 보완하여 시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존엄사’도 엄격한 의미에서 ‘소극적 안락사’로 보기도 한다.

필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최근 언론에서 논의되는 ‘존엄사’를 시행해야 하는 근본 이유에서 편향된 시각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존엄사를 시행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인간답게 마지막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자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이기 때문인데, 마지막을 비인간적인 고통 속에서, 인간성 상실의 지경까지 가는 극단적인 경우를 피하고 인간답게 존엄하게 끝을 맺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의학적, 법률적, 사회적 가치나 의견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신학적, 성경적 해석은 충분하게 언급이 안돼 안타까움을 더 한다.

필자도 기본적으로 ‘조건적 존엄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생명연장은 재고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끝맺는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Dignity of life)’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성하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런 존엄성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이지적 능력, 자기 인식, 의사소통, 지능과 자아개념 등과 같은 독특한 능력들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학자에 따라 몇 가지씩의 기준을 제시하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은 단독자로서 그 어떤 외부의 영향력(절대자나 하나님)없이 근원적이고 자명한 가치를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 존엄성을 지켜 나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달리 말하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인간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들에 의한 ‘존엄성(dignity)’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 없이 단독자로서의 존엄한 가치가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나의 생명을 지금도 유지하시며, 지금도 부모를 통해 ‘대리창조(Pro-creation)’의 역사를 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비로소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성(Sanctity)'하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인본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생명의 마지막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자 삶을 고결하게 마감해야 한다면, 태어날 때도 마찬가지로, 태아감별이나 유전자 검사로 무뇌증(Anencephaly)이나 다운 증후군(Mongolism)과 같은 치명적인 선천적 기형아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명되면, 같은 이유로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인공유산을 해야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삶의 질’을 문제 삼아 인간이하(sub-human)나 치명적 장애자로서의 삶은 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단독자로서, 하나님 없이도 가치가 있고 의미있기 때문에 존엄한 삶을 살고 존엄하게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안에서, 그분과의 관계성 속에서 의미 있고 가치 있기에 생명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나친 인위적 조작이나 연명보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호하고 존귀히 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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