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1992년이었으니 벌써 2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 유학생활 첫 시작이었던 이스라엘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현대 히브리어였습니다.

성경 히브리어와 모양은 동일하였으나 현대에서도 성경에서 사용되던 글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현대 히브리어는 성경 히브리어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점을 궁금해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성경 히브리어를 공부하였다고 해서 현대 히브리어를 말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현대 히브리어를 하게 되면 비록 성경 히브리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어도 히브리어 성경을 읽을 때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고 말입니다. 간혹 이와는 반대로 현대 히브리어가 성경 히브리어를 읽으려고 할 때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미에 있어서 현대 히브리어와 성경 히브리어가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히브리어 대한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래도 많은 경우 현대 히브리어는 성경 히브리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곤 합니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성경 히브리어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히.렘)대로 지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이 성경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용어이기에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형상’이란 책임 있는 인간 존재의 측면을 말하며, ‘모양’이란 영적인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육체와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그리 바람직한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통합된 존재로써 행동하고 사고하는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히브리인들이 ‘형상’(히.렘)이란 말을 어떻게 응용하여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사진 찍는다’고 할 때 ‘찔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렘’이라는 말과 어원의 뿌리가 동일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으나 ‘사진찍다’라는 말의 ‘찔렘’이라는 현대 히브리어를 통하여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형상’ (히.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네 동생 어떻게 생겼니”라고 물었을 때 백 마디의 설명보다 사진을 보여 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는 말은 우선적으로 인간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떨어져 나온 존재가 아닌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시간 세계에 드러내는 표현으로 우리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히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의미 그 이상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물건을 구입하였을 때 그 물건에 설명서를 보고 그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를 인간 세계에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이 목적은 달성 되지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의 범죄함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상실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류가 아닙니다.

창세기 9장 6절에 의하면 비록 타락하였어도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본성에서 제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으로 손상된 인간에게 있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히.렘)을 본래대로 새롭게 회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골로새서 3장 10절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묘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회복! 이것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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