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행정학자 허시(Paul Hersey)와 브렌챠드(Kenneth Blanchard)에 의하면 리더십 유형은 자동차 네바퀴처럼 크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네가지 유형을 가지고 지도자가 추종자의 성숙성에 따라서 상황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가장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첫째는 명령형 리더십 유형이다. 이 유형은 지도자의 생각이 100%인데 성경 속 지도자 가운데 모세의 리더십이 명령형이다.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게된다. 군대에서의 리더십이 명령형이다. 그래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하는 목회자나 경건한 신학자는 이런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다. 사탄을 향해서 마귀를 향해서 강하고 담대하게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마귀와 사탄에게는 오직 명령이 있을 뿐이다. 사탄아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 명할 수 있는 지도자가 탁월한 지도자임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그런 점에서 목사나 신학자는 반드시 성령 충만해야 리더십이 서게 될 것이다.(슥 4:6, 행 1:8)

둘째는 설득형 리더십 유형이다. 이유형은 구약에서는 다윗왕이며 신약에서는 바울사도이다. 설득형은 지도자의 생각이 75%, 추종자의 생각이 25%이다. 설득형 리더십이 절대필요한 조직은 학교일 것이다. 대학교수나 중·고등학교 교사의 리더십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다른 말로 바꾸면 세일즈맨의 리더십 유형이다. 회사의 제품이나 물건을 많이 팔려면 소비자를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가 추종자나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가 필수요건이며 그보다 더욱 좋은 인상(image)과 매너(manner)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니라(약 3:2) 목사나 신학자는 말을 잘하기 보다 말에 실수가 없도록 말에 소금을 치고 입에 자갈을 먹여야 할 것이다. 세치도 안되는 혀가 온 몸을 불태워 버리기 때문이다.(약 3:6-8)

셋째는 참여형 리더십 유형이다. 이 유형은 지도자 생각이 50%, 추종자의 생각 50%이다.

서로가 동등한 자격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높여주며 고통을 함께 나누며 기쁨도 같이 나누는 것이다. 목사가 성도의 아픔에 동참하며 교수가 학생의 고통에 같이하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동등하게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참여형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울까?(시 133)

바울사도, 마틴 루터, 존 캘빈, 존 웨슬리 그리고 한국의 주기철 목사, 이성봉 목사, 문준경 전도사. 이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의 교회가 큰 것도 아니며 학식이 많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들의 몸에 채웠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숭상하는 지도자 곧 이순신 장군, 유관순 누나, 안중근 의사 그들을 능가할 한국 교회지도자는 배출되기 어려울까?

넷째로 위임형 리더십 유형이다. 이 유형은 예수님 리더십이며 부모형 리더십이다.

지도자의 생각은 0%, 추종자의 생각이 100%이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요 21:15) 예수님은  배신자 베드로에게 권한을 위임하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서양은 수평적 관계이나 동양은 수직적 관계로 인간을 위 아래로 보기에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위임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자기가 다 하려고 한다. 자리를 내어줄 줄 아는 지도자가 때가 되면 물러날 줄 아는 퇴계형 리더십이다.

항상 여론을 경청하고 때로는 추종자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겸손한 지도자, 그런 지도자가 성결운동의 주창자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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