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이창열·이수자 선교사(세현교회)
사명으로 인생 2막을 연 아름다운 황혼

기획 - 실버 청춘이 달린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건강한 노인상의 기준도 점차 바뀌고 있다.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하는 식의 고정 관념을 떨쳐버리고 과감한 도전 의식과 뜨거운 열정으로 젊은이들 못 지 않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크리스천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하나님의 일에 은퇴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들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젊은이 못지않게 자신의 꿈을 활발히 펼치는 ‘크리스천 실버 청춘’을 소개한다.

세현교회 이창열 명예장로(76세)와 이수자 명예 권사(75세) 부부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편히 누릴 수 있지만 젊은이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해외선교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3월 20일 세현교회(정진호 목사)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 받은 이들 노(老)부부는 4월 11일 방글라데시에 선교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공군 중령 출신인 이 장로와 간호공무원 출신인 이 권사는 직장과 교회 직분에서 은퇴한 이후 ‘좀 쉬시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선교의 꿈을 펼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2년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위치한 가나안비전센터(이중환 선교사)에서 운영하는 다카세림클리닉(Dhaka Serim Clinic)에서 의료사역을 도울 계획이다. 낯선 땅 방글라데시에서 노부부는 현지 적응에 바쁘지만 선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씩 사역을 늘려가고 있다. 이 장로는 계획했던 대로 색소폰 사역을 시작했다. 센터 자체 예배와 방글라데성결교회 목회자세미나에서 색소폰으로 찬양을 멋지게 연주했다. 아내 이 권사는 5월 2일 다카세림클리닉에 첫 출근을 했다. 물론 아직 낯선 타국생활이 쉽지만 않다. 당장 더위와 싸움이 가장 힘들다. 46도까지 오르는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이다. 그렇지만 노(老) 선교사 부부는 “선교는 사명만 있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선교사역에 충실하고 있다.

“죽을 각오로 갑니다.”
이들 노부부가 선교사로 떠난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반대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돌봄을 받아야 나이에 무슨 선교냐”며 “가지 말라”고 모두 만류했다. 낯선 기후와 환경, 다른 언어와 문화 등 앞으로 헤쳐가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당장 건강이 가장 염려가 됐다. 이수자 권사는 2002년 유방암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사실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들 부부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죽을 각오까지 한 결정이었다. 부인 이 권사는 “각오하고 왔어요. 죽을 각오로 왔다니까요”라고 단호했다. 이 장로도 “한국에 있어도 건강 문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도 한결같은 마음이다. “염려가 되면 왜 왔겠습니까?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까 걱정 없습니다. 설령 죽어도 할 수 없지요. 살만큼 살았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죽음까지 불사한 선교 열정, 노년에 만개한 그들의 선교의 꿈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남들은 걱정이 앞섰지만 이들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 권사는 “꿈에 그리던 선교하러 간다고 막 기도하는데 기뻐서 엉엉 울었어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선교가로 하시는 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흘렸어요”라고 걱정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은 생애 마지막까지 주를 위해
이들 선교사 부부는 오래 전부터 선교사 비전을 품고 있었다. 간호 공무원으로 은퇴한 이 권사는 필리핀 중국 태국 몽골 캄보디아 말레시아 등 해외로 의료선교를 다니면서 전문인 선교사를 꿈을 이어갔다. 퇴직 후에도 꾸준히 의료봉사활동을 벌였던 이 권사는 2011년 필리핀 의료선교 후 결심을 굳혔다. 이후 그녀는 남편 이 장로에게 “더 늦기 전에 선교하러 나가자”고 재촉했다. 몇 년간 그렇게 졸랐다. 하지만 이 장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97세인 연로한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것이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선교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전도에 매달렸다. 그런데 예전 보다 전도가 잘 안됐다. 많게는 1년에 100명까지 했는데, 1명도 전도하기 힘들었다. 가슴은 답답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선교 생각 뿐이었다.

이 권사는 “정진호 목사님도 계속 선교가라 그러고, 큐티를 해도 선교 가라는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 이 장로도 30년 이상 예수 믿고도 주를 위해서는 해 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더 의미 있게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선교는 나이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믿음과 소명이라는 깨닫게 된 것이다.

결심을 굳힌 후 이들은 정진호 목사의 권유로 교단 선교사훈련원에서 2주간 훈련을 받고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주변에서는 방글라데시 같은 후진국 말고 호주 등 환경 좋은 곳을 권유했으나 그들은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를 선교지로 정했다.

“기도하는 중에 1960~70년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던 우리나라 현실이 기억나게 되었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방글라데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강하게 찾아왔어요. ‘아! 하나님이 이곳으로 가라하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 부부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지막까지 순종한 것이다.

섬기고 베푸는 황혼이 아름답다
노 선교사 부부가 선교지에 도착한지 이제 한 달 여가 됐다. 그래도 선교 열정만큼은 여느 선교사에 뒤지지 않는다. 부인 이 권사는 벌써부터 사역 계획에 마음이 분주하다. 병원에서 진료를 돕는 일 외에 한 지역을 선정해서 기초 보건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산원 경험도 있는 권사는 모자보건에도 나설 생각이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방글라데시는 아직도 비위생적인 출산이 문제라서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이 장로도 나름대로 사역을 개발 중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색소폰이나 한국어를 현지인들에게 가르치는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의 황혼 선교가 아름다운 것은 자비량 사역이기 때문이다. 세현교회에서 매달 받는 30만 원이 후원금의 전부이다. 월세를 내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일생을 일하고 받은 연금을 선교를 위해 기꺼이 털어 넣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누고 베푸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사역 외에도 현지 선교사를 돕고 섬기는 일도 물질과 재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머리가 하얗다 뿐이지 선배 선교사를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또 누구보다 먼저 선교사 가족 중 비자연장 문제를 가장 걱정해주고, 기독교 대학 건립을 위한 구입비 등 선교지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 노선교사 부부는 선교란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소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사명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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