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히.야말)와 거룩

전쟁을 할 때 무기를 던져 놓고 나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을 하기 전 무기를 점검하고 챙기는 것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하기 전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입성하기 전에 치뤘던 여리고 전쟁에서였습니다.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 적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히.야말)를 베풀라고 합니다. 사실 여리고성을 지척에 두고 내리신 하나님의 할례명령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자의 성기 피부를 베어내는 행위로써 이 의식이 전쟁 중에 수행된다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못된 일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복수를 감행하는데, 이것 역시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히.야말)를 받아 고통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여리고 전쟁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히.야말)를 받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히.야말)를 행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이었으나 불순종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에 의지하였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통해 그들의 생존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여리고 전쟁에 앞서 할례(히.야말)를 받는다고 해서 지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할례(히.야말)를 안받는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그들은 할례(히.야말)를 행함으로써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인생에 계산해 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었습니다. 즉 할례(히.야말)행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었음의 시작을 알려준 사건이었습니다.

아이성 점령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하고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죄를 발견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제거함으로써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이성을 차지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의 능력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은 거룩하면 무능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거룩이 모든 것입니다. 할례(히.야말)는 우리 삶의 승패가 능력과 힘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렇게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적군 앞에서도 할례(히.야말)를 행할 수 있는 거룩한 삶에 도전해야 합니다. 거룩을 상실한 속된 세상 속에서 돈키호테처럼 거룩을 고집하며 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거룩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거룩함을 수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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