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신 장로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성경과 찬송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로 흔히 쌍벽(雙璧)과 같은 존재이다. 내 나이 만 7세 되던 겨울에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출혈과다로 마흔두 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 때에 어른들이 부른 찬송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부모의 세대에서는 조혼에 가까울 정도로 일찍 결혼해서 그 나이에 벌써 열두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 때는 다산다사(多産多死)하여 최후까지 남은 자녀는 2남 3녀였다. 그 때 어른들이 열심히 어머니를 위해 부르셨던 찬송은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특히, 후렴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는 천국에 대한 열망을 더 강조해 주었다. 또 어른들이 열심히 부르신 찬송은 천국을 묘사하고 있는 “저 좋은 낙원 이르니’였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이 세상 추운 일기가 화창한 춘일 되도다.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 산 위에서 보오니 먼 바다 건너 있는 집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 특히 3절 가사는 “저 기화요초(奇花姚草) 향기는 바람에 불려 오는데 생명수 강변 화초는 늘 사시청춘이로다”였다.

그 당시 불렀던 가사 중에는 “그 쾌락 내 쾌락일세”가 있었는데 지금 가사에는 다르게 표현되어 아쉬운 생각이 난다. 특히 “화창한 춘일 되도다”는 내가 어른이 되어 우리 교회 이춘일 장로님의 이름과 똑같아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장로님 이름이 찬송가에 등재된 것을 축하합니다”고 인사한 일이 기억난다. 이 두 찬송은 어머니 천국행을 생각할 때 마다 회상되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1980년대에 김성호 목사님이 우리 교회 담임이셨는데 한국찬송가공회 총무로 계셔서인지 예배시간에 은혜스러운 찬송을 많이 부르게 하셨다. 그 중에 “목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 주소서.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라는 곡은 빠른 행진곡과 같아서 한 번 부르면 용기가 샘솟아 오름을 느꼈다.

그 외에도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 강림함이라”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나 어느 날 꿈 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등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후 이 중의 어떤 찬송은 잊혀진 채 내 의식 저변에 가물거리는 것들도 많았다.

나는 서른 명에 가까운 성도들과 함께 어디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내가 맨 앞줄에 서 있었고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40년 전에 부르고 까맣게 잊었던 찬송의 후렴인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이 나왔다. 나는 그 찬송의 이 후렴만 기억할 수 있었는데 내 뒤에 행진하고 있었던 성도들이 완전한 가사로 우렁찬 합창을 해주었다. 행진곡이었다. 이 우렁찬 찬송에 눈이 떴다.

꿈이었다. 꿈 속에서 후렴만 알고 있던 그 찬송을 합창으로 듣는 복을 받은 나는 얼른 그 찬송이 몇 장인지 아무리 찾아도 알 길이 없어 김성호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309장 “목마른 내 영혼”임을 알게 돼 자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였고 하나님께서 이런 꿈을 자주 꾸게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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