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박사
목회상담(기독교 상담)의 역사는 대체로 세 단계로 전개되고 있다고 본다.

기독교 초기부터 (물론 구약의 전통도 포함할 수 있다) 성서와 기독교신학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달하는 형태의 ‘내용모델’ 또는 ‘말씀 모델’ 중심의 상담이 그 첫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는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이 목회상담에 침투해 들어와 말씀의 전달 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심리현상과 그 역동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둔 ‘심리 모델’을 들 수 있다. ‘내용 모델’이 상담의 목적이나 방향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본다면, ‘심리모델’은 내담자의 심리구조나 상담방법론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모델을 들 수 있다. 최근에 정신분석이나 인간주의 상담을 강조하는 ‘심리모델’이 주조를 이루면서, 목회상담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기독교적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심리학적으로 탄탄한 상담모델을 추구하려는 모습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한 노력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 요법’의 탄생이다.

‘그리스도 요법’은 사실상 가톨릭 신학자 버나드 타이렐(Bernard J. Tyrrell)이 창안한 기독교 상담의 하나이다. 그가 ‘그리스도 요법’을 창안하게 된 배경에는 그 자신의 철저한 체험이 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그를 비롯하여 수많은 동료 사제들이 겪는 영적, 심리적 격변을 지켜 보면서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길이 없는 검은 숲속을 헤매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스승 버나드 로너간(Bernard Lonergan)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으로 회심하는 은총을 경험하게 되고, 그는 그 사건을 날카로운 각성을 통한 ‘긍정적 붕괴’를 맛보는 신학적 전환으로 해석한다.

그 후에 그는 친구인 대표적인 가톨릭 영성가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의 조언으로 토마스 호라(Thomas Hora)라는 실존주의 심리치료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서 ‘가장 생동적이고 실존적인 의미의 충격적인 경험’을 갖게 되었다. 토마스 호라는 그에게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사제이며 신학자인 당신이 심리치료사를 찾아와야만 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당신이 추구하는 종교가 참으로 생명력을 갖고 있고 당신이 참으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것이 당신이 겪는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당신을 치유하는 근거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충격으로 그는 그 후 실존적 심리치료에 관하여 심도 깊게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참된 종교는 전인적 치유가 가능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속에 나타난 치유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하기 위하여 내면의 눈을 열고 성서를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그는 ‘마음-비우기’와 ‘영혼-즐기기’라는 그리스도 요법의 중요한 명제를 찾게 되었고 영성과 실존주의 심리치료를 접목하여 ‘그리스도 요법’이라는 새로운 기독교 상담의 문을 열게 되었다.  

요약컨대, 기존의 기독교 상담의 제반 치료법들이 교리나 신학적 개념을 심리치료에 접목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면, 그리스도 요법은 모든 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성’과 ‘실존치료’를 접목하였다는 점에서 교리나 개념을 넘어서 영성을 강조하므로 다른 기독교 상담 치료와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상담의 정체성을 교리나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영성’에 두었다고 하는 점이 ‘영성’이라고 하는 체험적 요소가 강조되는 이 시대를 위한 기독교 상담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버나드 타이렐은 ‘그리스도 요법’을 일컬어 ‘깨달음을 통한 치유’(Healing through Enlightenment)라고 명명하였다. 그 깨달음이란 사도행전 17장 28절의 체현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필자는 ‘그리스도 요법’적 관점에서 그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읽고 싶다. “우리가 현재 살아있다는 그 사실, 그리고 이렇게 사지백체가 온전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그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자체는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 존재의 근거가 되시며 우리의 삶의 의미, 곧 존재의 이유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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