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헌금으로 전 재산 바치다

이순영 권사는 전도와 교회부흥에 힘썼다. 해마다 그녀의 전도로 30~40명이 새신자가 되어 등록했다.
1980년 10월 이순영 집사가 59세 때 채산교회 박재옥 목사는 전도 왕 이순영 집사 외 5명의 권사취임식을 거행했다. 그 때 그녀는 주의 일에 평생 헌신하겠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서약을 한 후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했다.

이순영 권사가 임직하고 5년 후에 그녀가 전도한 서창례 집사가 권사취임을 받았다. 그녀는 서창례 권사와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온 동네의 집집마다 방문하며 차근차근 전도했다. 심지어 관공서며 보육원까지 다니며 전도할 뿐 아니라 보육원 김장까지 담궈주었다. 아이들이 많을 때는 150명까지 보육원 교사들이 인솔해 채산교회에 데려와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다.

이순영 권사가 처음 교회에 나갈 때 채산교회 신자가 15명 정도였는데 얼마 안 가서 장년 1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부흥되기까지 전도 왕 이순영 권사의 충성이 한 몫을 했다. 그녀는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한 것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전도해 큰 효과를 봤다.

채산교회가 부흥하여 교회를 건축할 때 이순영 권사는 전 재산인 논 서마지기 논 문서를 교회에 바쳤다. 그 때 남편 김순길 집사가 ‘아무리 신앙도 좋지만 교육시킬 자녀들도 있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데…’ 하면서 조금은 못마땅해했지만 아내가 하는 대로 막지는 않았다.

남편은 기왕 논문서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를 물릴 수도 없어 순종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성경의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그때부터 교회에 더 관심이 생겨 열심히 봉사했으며, 결국 채산교회 건축위원장으로 총 지휘를 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김순길 집사는 본래 건축하는 일을 했다. 재래식 부엌을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일, 타일을 붙이는 일 등을 직업으로 했기에 성전건축 책임자로 적임자였다. 그의 수고로 지은 웅장하고 큰 예배당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으로서는 강경에서는 보기 드문 건물이었다.

1985년 채산교회가 성전 봉헌예배를 드리면서 남편 김순길 집사가 권사로 취임했다. 이제는 두 내외가 권사 직분으로 주의 일을 더욱 받들어 섬기는 가정이 되었다. 이순영 권사는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그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그 결과 6남매 중 목사 1, 장로 2, 집사 1, 권사 2명 등 모든 자녀와 손주들이 교회에 충성하고 있다.

이순영 권사는 죽음 직전에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이 전도하라는 것인 줄 알고 날마다 감사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했다. 채산교회 성도들과 환자들을 데리고 좋은 기도원을 찾아 강경에서 장성까지 다니면서 10년 동안 전도한 숫자가 평상시 기도해주고 치료받았던 성도들의 숫자보다 더 많았다.

두 내외가 70세로 교회직분에서 은퇴하자 큰 아들 김형근 장로는 6개월 동안 부모님을 미국 곳곳을 구경시켜드렸다. 그 후 김순길 권사가 78세에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고 3년 후 이순영 권사가 78세에 주님 품에 안겼다. 큰아들 의학박사 김형근 장로, 3남 김형선 장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고 5남 김형용 목사는 어머니의 소원을 이룬 착한 목회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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