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입후보자들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기도 했을 터다. 여야 정당들에게도 총선의 결과는 당의 명운을 가름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여야 모두에게 초장부터 정치꾼들의 권력 싸움판이었다. 국민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속적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서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한다. 무릎 꿇고 빌든 북풍이든 무슨 바람이든 표를 얻는 데 이용할 수 있는 것이면 가리지 않는다.

국회의원 선거는 여야의 피를 말리는 싸움이고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싸움이다. 우리 정치사가 그랬듯이 현직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 집단에게는 임기 후의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 이렇듯 어두우니 건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지사적 목마름에 가슴이 탄다. 이 민족과 이 나라의 생존이 위태로울 만큼 변화무쌍한 한반도와 동북아 사태를 보면서 긴 안목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력이 없는 것을 통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안타까운 점은 보수든 진보든 여야 정치권이 사회적 여론 형성에서 이런 흐름에 밀려나 있는 것이다.

총선은 끝났다. 위의 현실적인 상황과 함께 중요한 것이 있다. 법치의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인도적 인륜도덕이다. 먼저 민주주의는 저절로 자라지도 발전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는 치열한 시민적 감시, 사회적 견제, 가치관의 교육을 통해서 발전한다. 민주주의 앞의 법치라는 수식어는 각종 법의 제정과 개정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미디어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소통 기능의 공정성에 근거한 건강한 여론 형성, 사회적 약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공적인 보호와 지원 등이 최소한 법으로 작동돼야 한다. 법 집행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를 편든다면 그건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다음은 시장경제이다. 사반세기 정도 세계적으로 진행돼 온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가 수명이 다했다는 진단이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흐름을 주도해온 다보스포럼조차 극심해진 현재의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않고는 출구가 없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구체적인 실험이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 선거에서 유행하여 널리 쓰이는 말이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다. ‘기본적인 생존’이나 사회적 비교에 근거해 ‘품위 있는 생존’이 불가능한 집단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많아지면 사회 불안이 심각해진다. 국가 통치를 책임진 집단은 이런 경우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정보 사찰 등을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공권력을 강화하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현재의 우리 사회와 세계 경제의 상황에서 더불어 사는 경제는 공권력 강화로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도덕성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추락은 뼈아프다. 양심과 인륜에 기초한 도덕성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구조다. 도시로 말하면 상하수시설이나 쓰레기 처리 구조와 같다.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것이 부실해지면 심각한 현상이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도덕성을 가볍게 여기는 보수는 건강한 보수가 아니며 진보도 마찬가지이다.

한 마디만 더하자. 법치의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인도적 인륜도덕은 기독교 신앙에서 일반계시의 핵심가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드러난 구원의 특별계시가 사회와 역사 흐름에서 일반계시로 작동돼야 마땅하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이 게토 속의 자기들만의 주장으로만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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