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0:25~37)

지금 한국 농어촌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교파를 초월해서 농어촌 교회의 심각성을 모르는 교단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안에 농어촌 교회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지는 농어촌 교회를 살리는 방법은 없습니까?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고자하는 율법사에게 ‘여리고 도상에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한국교회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여리고 도상에서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한국교회의 농어촌교회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농어촌교회의 참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러면 농어촌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 중에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에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33절).

성경에서 민망히 여긴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뜨거운 마음으로 형제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나서 앞뒤를 살필 시간도 없이 즉시 이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좋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형제처럼 친하지도 않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며, 오히려 원수처럼 여기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오늘의 농어촌교회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지금 농어촌은 젊은 세대들이 떠나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 역시 텅빈 예배당에는 소수의 연로한 교인들과 교역자의 한숨과 낙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선교 초기에는 농어촌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서구식인 근대 영농법과 농기구, 그리고 신품종의 농작물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결과 반만년 깊은 잠에 취해있던 농어촌을 흔들어 깨워서 일제 폭정 하에서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농어촌 교회는 어머니 교회로서 신앙을 지키고 한국 교회를 부흥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공업화와 함께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특별히 농어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공업중심의 산업화 정책과 농산물 저가정책, 그리고 외국 농산물의 수입 등은 마침내 농어촌을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농어촌은 무분별한 식량증산운동에 매달린 나머지 화학비료와 농약과다 사용 등으로 농토 오염은 물론 농민과 나아가 자연까지도 황폐화하는 위기를 자초하였습니다. 이제 아름답던 금수강산과 낭만적인 농촌풍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농어촌 교회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더 이상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구호만 외쳐서도 안 됩니다. 농어촌교회의 신음소리가 통곡으로 바뀌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시 교회가 농어촌 교회를 살려야 합니다. 성경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즐거워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도시와 농촌을 구분할 수 없는 한 지체요, 공동체입니다.

본문에서 강도 당한 사람과 한 형제로 공동체를 이룬 사람은 오직 천대받는 사마리아사람 뿐입니다. 마땅히 함께 하여야 할 레위인도, 제사장도 있었지만, 이들은 상처를 싸매어 주거나 기름을 바르거나 여관으로 후송해 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도와주고 살려주어야 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외면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향교회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며 탈진해 가는데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형제인 우리 도시 교회들이 살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간 도시 교회는 많은 것을 농어촌 교회로부터 받아 왔습니다.

도시 교회의 그 많은 신자들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세계적인 대형교회를 만든 숨은 공로자가 누구입니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농어촌 교회가 배경이고 그 뿌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농어촌 교회는 한국 교회 부흥의 산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일을 뒷받침한 농어촌 교회가 도시 교회의 그늘 속에서 힘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도시 교회가 부흥되고 발전하는 것처럼 농어촌 교회도 건강하게 부흥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심각한 상태의 농어촌 교회를 살리는 길은 일시적인 물질적 지원이나 활동 보다, 좀 더 계획적이고 근원적인 자립운동이 되도록 고민하며 힘써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농어촌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농어촌 교회가 살아나면 도시 교회가 살고 변화됩니다. 그간 도시 선교에 치중하느라 농어촌 교회의 형편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각성합시다. 농어촌 교회는 침체된 한국 교회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새로운 선교의 블루오션이라고 확신합니다.

농어촌 선교의 패러다임을 공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농어촌 교회가 중심이 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영농 기술을 익힌 주의 종들이 주민들의 멘토가 되고, 도시교회들과의 유통망이 연결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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