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지 마세요

꽤 오래전에 루빈이라는 사람이 그린 재미있는 풍자만화가 있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방주에 타고 있었던 노아의 8명의 가족들과 둘씩 쌍을 이룬 짐승들은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셔서 땅을 마르게 하시고 비를 그쳐 주시자 그들은 드디어 방주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 때 두 마리의 기린이 두 마리의 코끼리 뒤를 따라 배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앞에 가던 코끼리 한 마리가 뒤를 쳐다 보며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계속해서 비만 왔잖아. 정말 지루하고 형편없었던 여행이야.” 온 세상에 있는 생물이 다 자기 죄 값으로 심판받아 수장된 마당에 죄가 있어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방주를 통해 구원해 주셨는데도 불평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교만함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죄를 범한 결과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깨어져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친 형제의 질투는 살인으로 이어질만큼 그 죄는 더욱 극악무도해 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회개하기 보다는 죄가 더욱 더 증폭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절에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하와가 가인을 낳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하와는 가인을 낳고 “…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히. 카니티 이쉬 에토 아도나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우리 국어번역만으로만 보면 하와는 자녀를 하나님이 낳게 하여 주셔서 낳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단순히 하와가 낳은 자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말미암아’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에트’는 본래 ‘~와 같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자면 “… 내가 여호와와 같이 득남하였다”하는 말입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자녀를 낳았다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득남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가인을 낳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기 보다는 마치 하와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처럼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가죽 옷을 입혀 주시기까지 하셨음을 잊은 듯한 모양새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이게 웬 은혜인지요.”라고 하며 감사했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잊은 채 가인을 낳은 것이 은혜가 아닌 하나님과 같이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는 하와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와의 이러한 교만은 그녀가 선악과를 먹게 된 동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먹으면 그들 역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단의 말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낳으면서 이런 교만한 태도를 보이는 하와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욱 깊은 죄의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교만해집니다. 오늘도 내가 하루하루 사는 것이 내 힘으로 사는 것인지, 혹은 돈의 힘으로 사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인지 살펴보십시오. 모세혈관 하나만 터져도 모든 것이 끝장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 오늘도 이렇게 살아있는 은혜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교만하면 멸망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분만을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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