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은 총회가 정한 장애인주일이다. 교단에서 장애인 주일을 제정한 것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일이지만 장애인 주일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목회자와 성도가 여전히 많다.

교단 총회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장애인 선교와 목회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일은 이를 위한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교단에서 장애인주일 시행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전국 교회에 안내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예장 통합 교단은 4월 셋째주를 ‘장애인주일’로 지정해서 지키고 있다. 단순히 장애인주일을 제정만 해놓은 것이 아니다. 통합 교단은 ‘총회 장애인주일 목회자료’를 전국 교회에 배포하고, 모든 교회가 예배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이웃으로서 장애인을 섬기도록 독려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필요한 기본 예식서를 ‘장애인주일 공동예배 순서지’와 장애인주일에 사용할 기초 설교문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단에서는 아직 장애인 사역을 전담하는 부서도 없다. 장애인주일 시행에 관한 공문이나 포스터조차 없는 실정이다. 올해는 말로만 장애인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갖고 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노력부터 하자.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라는 굴레에 의해 끊임없이 상처받고 사회적 편견의 벽에 좌절을 겪을 때가 많다. 교회가 먼저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국내 장애인 복음화율은 2~5%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복음화율을 보통 20~30%로 보는 것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은 곳에 임하셔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과 함께하며 사역하셨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다. 교회는 왜 이들과 이토록 멀어지게 됐을까.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장벽이다. 장애인을 위한 좌석이나 화장실, 엘리베이터, 경사로, 휠체어 리프트, 수화통역 등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교회는 많지 않다. 정말 독실한 신앙을 가진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결단’까지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한 물리적 장벽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장벽이다. 무관심 내지 부정적 인식 속에서, 장애인은 뭔가 부족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외계층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장애인을 단순히 돌봄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장애인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다.

그저 약간 불편할 뿐인데도 마치 ‘아주 불쌍한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는 장애인들을 대함에 있어 지양해야 할 자세이다. 장애인들을 그리스도 안의 한 인격체, 같은 신앙의 형제로 대우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차별과 편견, 외면과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에 시급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신앙적·신학적·현실적 입장 정리와 실천이다. 장애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들과 어떤 시각으로 신앙을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조금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는 어떻게 문을 활짝 열 것인지 방안을 세워야 한다.

장애인 주일을 맞아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이,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 정립이 시급하다. 장애인 선교는 장애인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재출발해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장애인의 선교와 복지, 인권을 위해 예수님처럼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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