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새로운 생명 탄생시키는 축제로 지켜

부활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초대교회에서 부활절은 교회절기로서 곧바로 지킨 것은 아니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최초의 기독공동체, 즉 예루살렘 기독공동체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들이 된 사람들(유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바라볼 때, 유월절과 연관하여 생각했다.

또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유월절과 무교절) 가운데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유대인들의 출애굽 사건 속에서 이해하였던 것이다. 즉,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바라보았고, 우리를 구원하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고 증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다.

요약하면, 초대교회에서 부활절은 처음부터 부활절이라는 절기로 따로 지켜진 것이 아니라, 유월절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안식 후 첫날의 부활을 함께 기념했고, 초대교회의 예배가 부활하신 날, 즉 주일에 모였다는 점은 매주 부활절을 지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활절은 왜 매년 날짜가 바뀌는가?
매주 부활절을 지킨 셈이 되는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날짜에 맞추어 매년마다 성대히 예배를 드렸다. 이는 2세기 중반 경으로 추정되는 부활절 날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추론될 수 있는 사실이다.

155년도 로마 교회의 아니케투스와 사도 요한의 제자로 여겨지는 서머나교회 폴리캅 사이에 부활절 날짜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 예수님이 니산월 14일에 고난 받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동방교회에서는 3일째 되는 날을 주일이 아닐지라도 부활절로 지켰지만, 로마 교회는 부활절이 주일이 아닐 경우 돌아오는 첫 번째 주일을 부활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큰 충돌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부활절 날짜논쟁은 197년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빅토르 로마감독이 부활절 날짜를 유월절 다음의 첫 번째 주일로 하라고 칙서를 발표하고 이를 강요하였지만, 동방교회들은 이를 거부했고, 로마교회의 감독은 거부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파문하려고 했다. 실제적으로 파문조치는 단행할 수 없었지만, 이 문제는 동방과 서방교회 간의 갭이 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로 기독교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우려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 날짜를 춘분이 지난 보름달 후의 첫 주일로 정하게 되었다. 올해 춘분은 3월 20일이라서 다음 첫 주일은 27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이 아닌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부활절을 5월 1일로 지킨다. 

고대 교회 부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안식후 첫날(오늘날 주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전날 밤부터 준비해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철야축제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처럼, 고대교회에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맞이하기 위해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해가 돋을 때까지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4세기 암브로시우스가 감독이었던 밀라노 교회에서는 부활절에 일 년에 한번 뿐인 세례식을 거행하였고, 이 세례를 받기 위해 세례후보자들은 사순절기간 내내 훈련을 받아야 했다. 세례후보자들은 토요일 전날 저녁부터 모여 세례식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했다.

말씀강독과 기도, 찬양으로 밤을 샌 세례준비자들은 날이 밝아 새벽닭이 울면 세례식에 참여하고, 마지막 순서로 첫 번째 성만찬식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교회 가족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을 환영하고 축복했다. 이제 세례를 받아 정식 교회가족이 된 이들은 곧바로 이어지는 세례후 교육을 일주일간 받아야 했고, 이곳에서는 다시한번 기독교 신앙의 기초,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 주기도문에 대한 강해설교를 들으며 한 주간을 보냈다. 이렇듯 고대교회의 부활절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축제의 장으로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성경에 없는 달걀과 토끼가 어떻게 부활절 상징이 되었는가
교회역사에서 달걀에 대한 언급은 7세기 혹은 8세기에야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데, 사순절 기간 달걀을 육식의 일환으로 간주해 금지했다는 언급이다. 이후 중세와 근대시대에서는 부활절에 달걀을 전달하는 것은 정당하고, 자유로운 일이었다. 달걀이 상징하는 것은 부활이었다. 달걀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 생명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연상했던 것이다.

물론 부활절 토끼에 관해서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서방에서 부활절 토끼는 달걀과 대등하게 부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펴져 있다. 부활절과 토끼의 관련성은 먼저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펴낸 히에로니무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잠언서 30장 26절에 나오는 사반과 시편104편 18절에 나오는 너구리를 토끼로 보고, 토끼가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고 그리스도에게 피하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4세기 암브로시우스도 토끼를 부활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 외에 의견으로는 부활절과 연결되는 유월절 어린양을 잘못 이해해 대치되었다는 설과, 다산하는 동물로 생명을 상징하는 부활 이미지에 적합하여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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