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 목사
진(晉)나라의 장수 환온이 촉(蜀)으로 가기 위하여 삼협(三峽)의 강물 길을 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인 하나가 강변에서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그 어미가 강기슭을 따라 구슬피 울며 1백여 리를 좇아오다가 마침내 배 안으로 뛰어들었는데 그대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배를 갈라보았더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습니다. 진노한 환온은 그 하인을 쫓아내 버렸습니다(世說新語).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는 뜻의 ‘애끊는 아픔’ 혹은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말을 기억하게 되는 푸른 원숭이의 해(丙申)입니다.

모세와 함께 고센 땅을 떠나 바다의 밑바닥에 난 길을 따라 홍해를 건너고 시내 산의 화염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아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걸었던 출애굽 제 1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난 제 2세대가 40세 이상의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시작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모세 5경의 5번째가 되는 이 책의 제목은 글의 첫 문장을 따서 ‘이것은 말씀이다’(Ele Hadbarim)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 제 1세대는 40년 전에 받은 시내산 율법(출 19:1. 민 10:10)을 따라 광야의 나그네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제 2세대는 앞 세대와 달리 요단강을 건너면 새로운 환경에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세대에게는 부모세대가 시내 산에서 받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가르침 곧 율법의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모세가 선포한 말씀’(신 1:1) 또는 ‘율법에 대한 설명’(1:5)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언의 형식으로 가르치는 설교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신세대를 강 건너의 새로운 환경으로 보내면서 ‘유언’하는 모세의 심정은 ‘단장(斷腸)의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히브리말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 역(LXX)은 이 책의 제목을 “이 율법서를 등사(謄寫)하여”라는 내용을 근거로 ‘율법의 반복’이란 뜻으로 ‘두 번째 율법’(Deuteronomion)이라 하였습니다.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출 19:1. 민 10:10)을 첫 번째 말씀으로 전제하고 그 가르침을 자세히 반복하여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이 책이 신명기(申命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번역자들의 학문적 배경이 작용하였습니다. 문자로서 신(申)은 ‘펼치다’, ‘아뢰다’, ‘말하다’라는 뜻으로 쓰였고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간지(干支) 중 땅의 수에서 9번째 상징하는 동물로는 잔나비(납+이:원숭이)에 해당하였기에 사람의 성(姓)에 붙여 ‘납 신’이라 하였습니다.

중국어에는 문자 하나에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동음이어의 혼란을 막기 위해 두 개의 문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동사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이름은 ‘신+명’이 아닌 ‘신명’으로 읽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을 번역할 때 참여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주역(周易.易經)에 친숙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문자를 ‘펼칠 신’이나 ‘아뢸 신’이 아닌 ‘거듭 신’으로 풀어야 합니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니 군자는 이로써 거듭 명하는 일을 수행한다.”(隨風이 巽이니 君子는 以로서 申命行事하니라. 巽爲風-周易)라는 구절을 기억하며 선택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고(마 3:1) 예수께서는 광야에서(마 4:1)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신 8:3, 6:16, 6:13) 으로 40일에 걸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히브리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명사(名詞)가 동사(動詞)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란 명사(dabar)는 ‘말하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고 ‘광야’(midbar)는 ‘말씀이 들려오는 곳’(mi +dabar)을 뜻합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은 시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새로운 민족이 되었습니다(민 9:1). 순교자 스데반은 조상들의 출애굽 여정을 가리켜 ‘광야교회’(행 7:38)라고 말했습니다.

사순절(2016. 2.1~3.26)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광야 여정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생명을 걸고 붙잡으셨던 신명기의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정체성이 담긴 천명(天命)입니다.

1. 수명(壽命) / 마4:1~4. 신 8:3
마귀는 40일을 금식한 예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배가 고파서야 되겠는가? 돌로도 떡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보여줘야지…”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초 생활에 필요한 양식에서부터 친환경 먹을거리, 만병통치 건강식품과 의약품 등, 먹는 것이 모든 것이 되어 버린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생존의 의미가 ‘돌’, ‘떡’ 등의 명사로 표현 된 것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있지 않음을, 동사로 표현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는 분명한 고백을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사랑이라는 명사가 관념과 지식이 된 시대에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을 비롯하여 15개의 현재형 동사(動詞)로 표현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책과 글이 아닌 지금 내 앞에 손을 내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여야 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일 때는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움직여야, 행동해야 생명입니다.

2. 사명(使命) / 마 4:5~7. 신 6:16
갈릴리 변방사람이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중심에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 할 수 있는 드문 기회, 성전이라는 건물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종교구조 속에서 그 성전의 꼭대기에 서는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 보겠습니까? 게다가 모세의 기도(시 91:11~12)를 인용하여 “여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가 너를 받아 줄 것”이라는 속삭이는 말이 황홀하게 들려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 행동은 모세와 다투면서 원망하던 조상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된다 하셨습니다.

교회와 성직을 이용하여 권력의 주변을 맴돌면서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의 시선을 마치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되 구유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요단강 밑바닥까지 낮아지셨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하였습니다.

3. 천명(天命) / 마 4:8~11. 신 6:13.
마귀는 아주 짧은 순간에(눅 4:5) 천하만국과 거기에 따라오는 영광을 예수께 보여주면서 그 모든 소유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예수께 제시한 조건은 딱 한번 무릎을 꿇어 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소유하는 것과 누리는 것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하나님께서 생명과 함께 주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것이며 다만 그 분을 섬기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공자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五十而 知天命)하였습니다.

사순절은 시내 광야로 오셔서 모세에게 주셨던 계명(誡命), 그 말씀을 가나안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애끓는 마음으로 설교한 모세의 신명(申命)을 통해 천명(天命)을 알아가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먹을 것 때문에 숙이지 않고, 이름 때문에 굽히지 않고, 죽음 때문에 꺾이지 않는 삶은 참으로 멋있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기만 하면 죽음조차도 삶과 하나로 얽히어 다만 벅차게 아름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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