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새해에 새롭게 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매주일 설교를 해야만 하는 설교자들에게는 평범하게 성경을 읽기 보다는 마치 광부가 금을 캐듯이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말씀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는 이 악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가장 먼저 말씀을 의심하게 하여 말씀에 대한 권위를 격하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전 마귀로부터 받은 시험도 실은 말씀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마귀는 금식하여 굶주리신 예수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황금을 우선시 하며 내가 살아야 하나님도 있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유혹은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에 대한 정면도전 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 그리고 먹을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 원리를 떡이 먼저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고 하며 그 순서를 살짝 바꿈으로써 예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이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였으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원어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 하시매 … 되었습니다”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때 ‘…라 하시매’(히. 예히) ‘… 그러자 되었다’(히. 바예히)는 말은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며, 그 명령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짧고도 담백한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의 우주의 침묵을 깨고 새로운 우주의 질서를 탄생시키는 신호이자 시작이었습니다. 창세기는 그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내리셔서’(히. 예히) 그대로 ‘되었다’(히. 바예히)는 창조사건과 하나님의 이름(히. 여호와)의 뿌리(語根)가 동일합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히. 에히예 … 에히예 출 3:14)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이름과 ‘…라 하시매(히. 예히)… 가 되었다(히. 바예히)’, 그리고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과 한결같이 그 뿌리가 ‘하야’ (‘존재하다’)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태초의 우주를 창조하신 주인공이실 뿐 아니라, 그 말씀의 주체이자 행위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요한은 헬라적 개념으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총체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사단의 집요하고도 예리한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는 곧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님으로 무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시험과 유혹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가지고 삶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면 예수님이 내 삶에 오신 것이기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미래가 아닌 현재적 세상에서도 ‘이미’ 임하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계신다면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간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말씀으로 사탄의 집요하고도 예리한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