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사람 유효통이 아들을 정승 황보인의 딸에게 장가들였다. 풍속에 따라 함 두 개를 예물로 보냈다. 황보인이 손님들 앞에서 함을 열어 보니 모두 서책이었다. 훗날 황보인이 유효통에게 물었다. “혼인날 예물함에 서책은 왜 넣었습니까?” 유효통이 대답하였다. “옛 글에 황금을 상자에 채워 주는 것이 자식에게 경(經) 하나를 가르쳐주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예물함에 왜 서책을 쓰지 않겠습니까?(원전·청파극담)

▨… 사람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독서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먹고 살기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들이 영화 감상, 음악 감상을 취미로 삼는다고 대답하기도 했으나, 그 시절에는 삶에서 취미생활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으므로 일년 내내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도 취미는 독서라고 말하는 것을 너도 나도 눈 가리고 아웅인 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었다.

▨…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취미생활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독서를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은 10명 중 6.5명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권 정도라고 문화체육부의 통계가 밝혔다. 책의 부피를 논외로 하더라도 1년에 9권이라는 독서량은 취미생활이라는 말을 충족시키기에는 어딘가 헛헛하지 않을 수 없다.

▨… 옛사람들에게 있어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삶의 요체였다. 책 속에 삶의 길이 있고 인간됨의 지혜가 있으므로 유효통은 예물함을 책으로 채우기도 했던 것이다. 김굉(1739~1816)은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만약 묵은 생각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보면 넘실대는 성인의 말씀이 어느 것 하나 질병을 물리치는 영약이 아님이 없다”(한글역·정민)고까지 하였다.

▨… 신구약 성경만 붙들고 씨름하기도 벅차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최고 지성인 층에 속하는 목사님들이기에 저들의 일년 독서량은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인 9권 정도는 훨씬 넘을 것이다. 비록 기독교출판사들이 판매부진에 한숨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업적 과장에서 쏟아내는 엄살일 것이다. 한때는 독서하지 않고 설교하겠다는 만용을 자랑하는 목사님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무지막지한 목사님은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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