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것이라 (사 43:1)

1956년 12월 7일 한 밤 중에 성경을 읽고 있던 중 이사야서 43장 1절에 이르렀을 때였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음성으로 “너는 내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려 “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나는 목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용산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56년 3월 왼쪽 무릎에 병이 생겼다. 결핵성 관절염으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어 휴학하고 병원치료를 시작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은 계속 깊어져 화장실 출입도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마당 저편에 화장실이 있을 때라 요강에 대소변을 받아내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견디다 못한 나는 모르핀을 주사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주사기로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그 때 나를 살려낸 의사가 김종서 박사이다. 의식이 돌아온 나에게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을 것을 권해주었다.

할 일 없는 병상에서 신구약 성경 66권을 읽고 또 읽던 중 앞서 말한 체험을 겪게 된 것이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나는 어려서부터 의사 지망생이었고 의사의 자질과 소명을 타고났다고 자부해왔다. 한 번도 내가 목사가 될 꺼라는 생각을 가져본 바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결핵성 관절염을 고쳐주심으로 마침내 1957년 3월 10일 지팡이에 의지하여 교회에 나가게 된 그날, 그 자리에서 의사의 뜻을 접고 목사가 될 것을 서원했다.

1959년 3월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고 부푼 꿈을 키워가고 있던 중 그 해 9월에 다리의 병이 재발했다. 휴학해야했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결핵성 관절염에서 왼쪽 대퇴골 골수염으로 병이 발전했다. 이듬해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왼쪽 다리 전체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 때 주치의가 정형외과 주정빈 박사였는데 수술 전 날 그분이 다리를 자르지 않고 골수와 고름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가 장차 목사가 되었을 때 다리 하나가 없다면 목회생활이 얼마나 불편할까를 생각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수술이 잘되도록 기도할 것을 일러주었다. 6시간에 걸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퇴원하는 날 주정빈 박사는 나를 불러놓고 과학자인 의사들이 쓰는 말 가운데 G.O.K (God Only Know)라는 것이 있는데 과학적으로 규명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때, 바로 너의 경우와 같이 의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임을 믿으며 그럴 때 이 말을 쓴다고 말해 주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나의 왼쪽 무릎은 45도 이상 꺾이지 않아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수술은 나로 하여금 교회 목회를 포기하게 하고 교수의 길로 또한 행정가의 길로 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김종서 주정빈 박사님, 이 두 분의 의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목사로, 교수로 만들어 쓰셨다고 믿는다.

또 한 분 1953년 부산 피난 당시 판자촌 임시교사 칠판에 “Look at the cheerful side”라는 문장 하나를 써놓고 열변을 토하던 영어선생님.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의 가슴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 날의 말씀은 나의 삶을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다.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이 나를 목사가 되게 하였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이 나를 교수가 되게 하였고, “언제나 즐거운 쪽을 보라”는 말씀이 80세를 바라보는 이 날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나로 하여금 극복할 수 있게 하고 일으켜 세우시는 것은 이분들을 통해 듣게 되고 알게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