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6~31)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수태고지의 내용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은혜의 참된 의미와 평안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바르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라고 하면, 내가 공감하고,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내가 만족할 만한 것이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가브리엘의 말대로 잉태하여 배가 불러오면 마리아의 생명은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을 신뢰하고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해보면 아마도 아니라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충분히 황당하고, 기막힌 상황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은혜는 인간 편에서 갖는 자기만족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위태롭지만, 내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상황이 좋아지고, 내가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 질 수 있고, 괴로움을 당할 수 있지만, 내게서 하나님의 일이, 또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명령만 하시고, 사명만 주시고, 멀리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역사를 감당하도록, ‘너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필요한 힘과 위로와 모든 것을 공급하시면서, 믿는 자들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하시며,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의미입니다.

또 ‘평안할지어다’ 라는 말씀에 나타난 평안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평안, 평강’을 마치 ‘편안한 것’으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평강, 평화)은 편안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가브리엘은 ‘네가 평안할 것이다’라고 선포한 것이 아니라, ‘평안할지어다’라고 명령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고 싸워서 이긴 후에 주시는 승리의 기쁨과 함께 주어지는 것이 평안함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안을 기대하고, 갈구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편에 서서 담대히 상황과 악을 대항하여 싸워 이기려 도전하지는 않고, 편안한 상태만을 추구합니다. 어쩌면 극히 소극적인 자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발생하고, 그 바라는 편안한 상태로서의 평안은 얻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싸워 이겨서,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참된 평안을 추구하는 담대한 주의 군사가 되길 바랍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군사로 비유하고, 믿는 자의 삶을 전투로 묘사합니다. 이 전투와 전쟁은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 우리가 치러야 하는 일임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싸워 참된 평안을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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