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총회는 성결교회의 콘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컨트롤 타워는 조직의 중심을 잡아 주고 방향성을 설정해 주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컨트롤 타워가 기준을 잃거나 흔들리면 교단 내의 교회들과 산하의 조직 및 기관들은 무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작금의 교단 현실을 고려할 때, 교단 총회의 위상 제고가 무엇보다 급선무인 것 같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법과 관례 간의 우선순위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법의 기본 정신은 다수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을 규정하는데 있다. 절차적 대의제라는 한계가 있지만 법은 다수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원칙이다. 따라서 총회 집행부나 소위 법통을 자처하는 몇몇 사람에 의해 법이 오남용 되어서도 안 되지만 합의된 법이나 총회의 결정에 불복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단의 저변에 귀 기울여 보면 법의 준수보다는 관례라는 말이 의외로 자주 회자되는 것 같다. 관례가 법적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관례가 성문법보다 앞설 수는 없다. 설혹 어떤 관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의 정당한 집행 과정에서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편법이나 불법에 근거한 것인지는 구별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이전에 행해진 사례가 있으니까 그것이 관례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불법과 편법의 전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관례라는 이름으로 불법과 편법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법 적용의 보편적인 상식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교단 총회와 집행부는 더 큰 아픔을 남기지 않도록 법의 기본 정신에 굳게 서서 총회를 운영해야 한다. 나아가 총회의 결의사항을 상습적으로 사회법에 호소함으로써 고의적으로 총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법 적용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총회의 위상 제고를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다. 법체계는 우리에게 내재된 탐욕의 문제를 정당하게 컨트롤하기 위한 하나의 제어장치이다. 조직에는 구성원들의 탐욕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관행이나 체계가 상존하기 마련이다.

교단 정치는 신앙 양심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신앙 양심에만 맡겨두는 것은 너무 위험성이 크다. 자기애 혹은 집단애의 유혹을 인간의 연약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속셈이 너무 뻔해 보인다. 그래서 합의된 법체계와 원칙이 중요하며, 법 적용에는 일관성과 형평성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집행부에 따라 법 적용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거기에는 분명 인간의 탐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두 사람이 서울신대 평생교육원을 같이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도 같이 진학했는데 전도사 승인 가부가 달라진다면 과연 누가 법 적용에 일관성과 형평성을 기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법 적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대다수 우리의 탐욕과 관련이 있다.

불법과 편법이 초래하는 폐단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법질서는 한번 무너지면 이후 다잡기 어려울 정도로 무법천지가 되기 십상이다. 누구에게도 준법정신을 요구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회와 집행부는 법 적용에 일관성과 형평성을 기하여 신뢰성을 제고하고, 법질서의 기강을 확립하여 우리의 탐욕스런 본능이 널뛰지 못하도록 콘트롤해야 한다. 교단의 구성원들 또한 고의적인 폐해가 아니라면 상회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 미덕일 것이다.

교단의 행정 처리에 있어서 원칙을 준수하는 것도 필요하다. 원칙의 준수는 내용과 절차 모두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물론 행정의 효율성과 편의성 제고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행정의 일반적인 원칙마저 무너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종종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행정 원칙의 준수에는 질서와 권위에 대한 존중뿐 아니라 건전한 인재양성이라는 차원에서 사전 교육과 훈련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상의 것들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로서 총회의 방향성과 목표는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단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함께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 아니겠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율과 통제 간에 따스한 선율이 흐르는 성결교단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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