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분명한 목표가 영생이라면 그 생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영생은 하나님 안에서 그와 함께하는 생이요, 하나님은 내가 있는 여기에 지금 계시기 때문이다. 영적인 생, 하나님 안에서의 생의 위대한 신비는 뒤에 일어날 무엇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다” (헨리 나우웬·‘지금 여기’) 요컨대 나우웬의 영성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라면 지금 여기의 삶이 영생의 출발점이 아닐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나우웬(1932~1996)은 이 세상 안에서 영생을 사는 삶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했다. 그는 예일대학교의 교수직을 접고 페루의 빈민가에 자신의 몸을 던졌으며 자신의 생애 끝자락 쯤에는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섬기다가 심장마비로 이땅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우웬처럼 지금 여기의 삶이 영생의 출발점인 줄 알고 산다면 삶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목사들만이라도 그와 같은 확신에 설 수 있다면 그 삶이, 그 목회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이땅의 교회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엉뚱한 상상이라면 그 엉뚱함에 대해 망상하고 있네라고 손가락질 받을까. 아니면 침 먹은 지네 꼴이라고 놀림이나 당할까.

▨… 한국성결신문 제1025호에는 서울신학대학 교수직을 은퇴한 어느 목사가 ‘예수가족공동체’로 노숙인들의 교회를 창립했음을 보도하고 있다. 서울신대 교수직을 정년 은퇴한 박사라면 목사 은퇴까지의 남은 5년이라도 박사학위에 구미가 당겨 청빙했으면 하는 교회도 있을 것이고,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결단하는 그의 인격과 신앙이라면 감춰도 드러날 수 밖에 없겠기에 청빙코자 하는 교회도 있을 법한데 자비량 사역의 노숙인교회라니! 모처럼의 싱그러운 소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그 목사가 말했다. “한국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고 풍성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풍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한국교인들은 하나님의 눈에 무가치한 또는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김희성·‘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어차피 오늘의 교회와 꽹과리는 필요충분조건인데 괜히 아플 수밖에 없는 말을 인용하는 만용을 용서하시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