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벗’ 길벗교회 ‘예수사랑공동체’ 이뤄
‘사랑채’ 마련해 김희성 목사 노숙인과 공동생활
겨울동안 노숙인 6명에게 쪽방 월세도 지원도

서울시 사당동 한 상가건물 지하에는 ‘노숙인교회’인 길벗교회(김희성 목사)가 있다. 길벗교회는 성도의 절반 이상이 노숙인이다.

 다양한 섬김과 나눔으로 노숙자선교를 지원하는 교회는 많지만 성도들의 상당수가 노숙인인 교회는 많지 않다. 길벗교회 사역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벗교회는 서울신대에서 20여 년 신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김희성 목사(서울신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2월 ‘예수가족공동체’를 목표로 설립했다.

개척 후 1년 동안 길벗교회는 길가 사람들의 친구이며 가족, 신앙적 동지가 되어주었다. 그 열매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한 노력과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 길벗교회 성도들이 1월 3일 2016년 새해 첫 주일에 신년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있다.

‘예수가족공동체 길벗교회’

새해 첫 주일이었던 지난 1월 3일 아침 길벗교회에 찾아갔다. 30명 남짓한 성도들이 모여 신년감사예배를 준비하며 뜨겁게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분명히 ‘노숙인교회’라고 했는데 밝고 깨끗한 분위기의 예배당과 여느 교회와 다름없는 예배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노숙인들은 주일 예배를 위해 깨끗하게 차려입고 찬양단의 일원으로 특송도 불렀다. 2016년 새해를 시작하며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눈빛마다 가득했다.

김희성 목사는 새해를 시작하며 올해 길벗교회 표어인 ‘살아나게 하라(겔 37:9)’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올해 ‘살아나게 하라’는 구원의 복음을 대언하며 영적으로 하나님의 큰 군대를 만드는 일에 우리 길벗교회가 전력을 기울이자”고 강조 말했다.

▲길벗교회 성도들이 예배 후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았다.

교회는 노숙인의 사랑쉼터
 예배 후에는 모든 성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길벗교회 개척멤버 성도들이 정성껏 마련한 식탁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양식이고, 시린 마음을 채워주는 사랑이었다. 맛있게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나서도 노숙인들은 교회에 머물렀다.

예배 후에는 모든 성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길벗교회 개척멤버 성도들이 정성껏 마련한 식탁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양식이고, 시린 마음을 채워주는 사랑이었다. 맛있게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나서도 노숙인들은 교회에 머물렀다.

▲ 길벗교회 김희성 담임 목사가 노숙인들을 위해 마련한 '쉼터'를 소개하는 모습. 노숙인 성도들이 예배 후 쉼터에 모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쉼터’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티비도 보고, 컴퓨터도 하고, 바둑을 두며 여유롭게 쉼을 즐겼다. 쉼터는 노숙인들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예배당 바깥 쪽에 마련한 독립공간이다. 쇼파와 대형티비, PC, 난로를 구비해 여느 집의 넓직한 거실같다. 테이블과 의자도 여러 개 설치해 바둑도 두고, 마주앉아 얘기도 나눌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특히 한쪽 벽면에는 개인물품을 수납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에서 볼 수 있는 잠금수납장을 설치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쉼터 한쪽에 마련한 탁구장에서는 식사 후에 빅매치가 열렸다. 교회 여성 탁구왕과 남성 실력자가 탁구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데 성도들도 신이 나서 응원전을 벌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 주일 오후에 탁구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길벗교회 성도들

노숙인 성도 위한 숨은 헌신
노숙인 성도가 절반이 넘는 길벗교회지만 다른 교회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어보이는 것은 담임목사와 성도들의 숨은 헌신 덕분이다.

길벗교회는 개척 준비 당시 예배당 리모델링을 하면서 샤워실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노숙인들이 언제든지 교회에 들러 상쾌하게 샤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깨끗한 속옷과 갈아입을 옷도 구비해 놨다. 교회를 4호선 이수역(14번 출구에서 도보 2분 거리) 근처에 세운 것도 서울역에 집중된 노숙인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처소도 마련해주니 이보다 노숙인들의 필요를 잘 채워줄 수는 없을 듯 싶었다.

▲ '빅이슈' 판매원으로 자활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성도들.

성도들, ‘빅이슈’ 잡지 판매로 자활 꿈꿔
길벗교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노숙인들의 ‘자활’ 의지였다. 교회에 지속적으로 출석하는 노숙인이 총 15명 정도인데 이중 4명이 잡지 ‘더 빅 이슈(The Big Issue)’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빅이슈는 노숙인들이 지하철 역 앞에서 직접 판매하는 잡지이다. 책값 5000원 중 절반을 판매자가 갖도록 해 자립기초를 다지게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술’ 마시지 않는 노숙인들 중 일정 교육을 받고 성실성을 인정받아야 판매원으로 일할 수 있다.

첫 타자는 전도영 성도. 지난해 8월 빅이슈 판매를 시작해 벌써 단골고객도 생겼다고 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지만 보람을 느껴요. 돈 벌어서 차비도 하고 밥도 사먹을 수 있죠. 시작한 지 6개월 넘고 적금도 붓고 있는데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전도영 성도의 영향을 받아 길벗교회 노숙인 성도들이 줄줄이 빅이슈 판매원으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이승준 성도는 3호선 경복궁역에서 한달 째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고, 문홍우 성도는 보름 전 2호선 문래역에서 빅이슈 판매를 시작했다. 윤진영 청년은 형님들을 따라 지난 1월 4일부터 빅이슈 판매원 교육을 시작, 새해 새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길벗교회 노숙인들이 직업을 찾고 임대주택 입주라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것은 길벗교회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낼 안정된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 길벗교회에서 운영하는 생활공동체 '사랑채' 식구들. 김희성 목사는 노숙인 성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한 집 ‘사랑채’ 문열어
길벗교회는 교회 인근에 방 3개짜리 집을 임대해 11월에 ‘사랑채’ 문을 열었다. 현재 이곳에서 노숙인 4명과 김희성 목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 목사는 “노숙인들은 겨울을 나면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는데 이들을 위해 따뜻한 생활터전을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에 사랑채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아간 사랑채는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 생활용품에 식탁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깔끔한 인테리어는 여느 살림집 못지 않았다. 식사는 요리사 출신 성도가 도맡아 하고, 청소는 공무원 출신 깔끔쟁이 성도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고 했다. ‘집’이 생긴 이들은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니라 재도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우리네 소시민의 모습과 같았다.

사랑채는 맨 꼭대기 층을 임대해서 옥상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봄부터는 텃밭도 꾸미고 길벗교회 가든파티도 여는 등 옥상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노숙인 성도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 김희성 목사는 고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사레를 쳤다. “우리는 예수가족공동체예요. 고생될 것 하나 없습니다.” 그는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족 같은’이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듯 했다.

길벗교회가 2016년에 써 나갈 특별한 희망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