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인대회에서 받은 은혜교단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세상이 개별화 파편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교회도 예외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모두 개 교회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음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가끔 많은 교회가 모여 연합 집회를 할 땐 아주 신이 납니다. 보고 싶은 얼굴도 볼 수 있고 나와 다른 목회관을 가진 분들로부터 듣는 얘기도 유익합니다. 더욱이 좋은 강사님으로부터 듣는 말씀이 영적 충전이 될 땐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얼마전 지방회에서 그런 행사가 있었습니다. ‘경북서지방회 성결인대회'가 그것입니다. 우리 지방회 연합 집회는 대부분 은혜롭게 진행되고 끝납니다. 모이는 숫자에서부터 참석자의 범위 그리고 강사 초청도 모두를 흡족하게 합니다.

이번 집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나바훈련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는 이강천 목사님이 강사였는데,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도 기대가 컸습니다. 영적 목마름이 우심한 현실에서 깊은 영성의 소유자인 이 목사님에게서 기대하는 은혜의 말씀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아니 약하게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 교수를 그만 두고 오랜 영성 훈련 끝에 목회자 재교육의 장(場)인 바나바훈련원을 설립해서 사역을 하고 있는 만큼 육체적 조건은 아주 왜소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목소리는 올라갔고 가끔은 예배당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한 울림이 예배당을 진동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목소리였습니다.

이번 성결인 대회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성도들이 참석했습니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은 이런 행사를 두고 하는 말일 듯합니다. 본당 2, 3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복도 사이사이에 의자를 갖다놓고도 부족해 뒤에 오는 사람들은 서서 말씀을 들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목회자들이 골고루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 참으로 풍성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에게 담임목사가 하기 거북한 말들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전달했습니다. 듣는 자들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아주 자연스럽게.

주어진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강의든 설교든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시간의 짧음을 아쉬워했습니다. 이어 모두들 은혜 받은 내용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들 그리고 연합 기관의 대표들은 이강천 목사님을 다음 집회에 강사로 초청하고 싶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인은 가능한 한 작게 성령의 능력은 크게 힘입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행동 사고 하나하나가 성령에 힘입을 때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작은 것을 지향하는 목회자인 듯합니다. 하지만 중심엔 하나님의 의지 즉 성령이 지배하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했습니다.

오늘도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교회 건축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비추었습니다. 내가 볼 땐 지금의 건물로도 많은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되는 것 같은데, 그분은 더 큰 공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기쁘게 여기실까를. 외형이 아니라 중심, 큰 건물이 아니라 영성의 성장을 진정 바라시는 하나님이실 거라 여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까요? ‘경북서지방 성결인대회'에서 강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받은 은혜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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