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언덕의 학교터

토마스는 카우만과 곧 서대문을 벗어나서 한 언덕에 올라갔다. 이 언덕에서는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는 산들이 이어져 있었다. 학교부지로서는 정말 공기가 쾌적하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서울장안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이 오랜 세월 동안 빈터로 남아있었다는 것은 오로지 성서학원이 세워지는 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었다.

이 언덕에는 감나무, 살구나무, 벚나무, 자두나무로 뒤덮여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과 과일이 열리는 아름다운 언덕이었다. 온 도시를 다 뒤져봐도 학교터로 이 보다 알맞은 장소를 찾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수세기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처럼 보였다. 땅값도 앞서 사기로 했던 것에 비해 반값도 채 안 되는 훨씬 싼 값이었다.

이렇게 좋은 학교대지를 사들인 것이 너무나 기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나머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동양선교회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석회, 석공, 목수까지 다 계약을 해놓았습니다. 이번 주 안에 공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라면 5배의 돈을 가지고도 이런 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이것은 주님의 뜻으로 확신하고 자주 이곳을 거닐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곳은 서대문 건너편에 위치한 ‘험한 농장’으로 불리는 죽첨정(竹添町) 3정목 35번지 애오개 마루턱이다. 광복 후에는 충정로 3가 35번지였고 현재 개정된 주소가 서대문구 신촌로 331번지이다.

마포구 아현동과 서대문구 아현동 사이의 고개인데 남쪽 만리동과 서쪽 대현동에 더 큰 고개가 있고 이곳은 작은 고개이므로 아이고개, 애고개 또는 애오개로 불렸다. 현재는 애오개로 불리고 있고 5호선 지하철 역명도 애오개로 되어있다.

애오개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대현동 사람들이었다. 대장간이 많아서 연장이나 유기제조를 많이 했던 대현동 사람들은 아침 해와 저녁 해를 안고 다니는 건실한 사람들이었다. 

토마스 원장은 임시교사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서대문밖 애오개로 올랐다. 한눈으로 서울장안을 내려다보며 “이 터에 저 성 곧 서울장안을 점령할 군병들을 양성할 집을 지은 터인데…” 하면서 혼자 기도하고 건축 상황을 돌아보는 일은 벅찬 일이었다. 그리하여 카우만 총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ne) 목사 내외는 도쿄의 임지로 돌아가지 않고 토마스 원장을 돕기 위해 머물고 있었다. 토마스 원장에게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바로 이때에 길보른 목사의 2세 20대 청년 버드(Bud) 길보른이 원장을 도우러 한국으로 왔다. 버드는 에드윈 길보른(Edwin W. Kilbourne) 선교사가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이름이다. 토마스는 버드가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청년이기에 성서학원의 건축을 그에게 맡겼다. 버드가 성서학원 건축 감독을 맡게 되자 길보른 내외는 일본임지로 돌아갔다.

약관 20세의 그는 토마스를 친아버지처럼 여기고 존경하며 따랐다. 토마스 원장은 그의 총명하고 재치 있는 열정에 탄복했다. 토마스 감독은 하루 속히 아무 사고 없이 학교건물이 완공되기를 격려하며 기도로 후원했다. 약 15개월에 걸친 성서학원의 건축은 1912년 봄에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1912년 6월 10일에 성서학원학생들이 새로 마련한 2층 신축교사로 이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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