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 보면 처녀가처녀가 낳은 아기  사 7:14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 물론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남자와 접촉을 통해서 아기를 낳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혼모입니다. 그러나 남자 없이 처녀 혼자 아기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상식으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은 그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요셉 말고도 다른 남자와 접촉하지 않고서도 임신하였습니다. 천사는 그것을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때가 되어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 아기를 가리켜 본문은 처녀가 낳은 아기라고 하였고, 창 3:15절에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갈 4:4에서는 여자가 낳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기를 가리켜 사 9:6에서는 ‘정사를 메신 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나요? 죄인된 인간과 같이 있으면서 그 죄인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기의 이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요, 또 그 아기의 다른 이름은 ‘예수’,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이 아기는 인류의 역사를 주전과 주후로 갈라놓았고 모든 인류에게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그 이름의 뜻처럼 열어놓았습니다. 그는 인류의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런 엄청난 사건이 어찌 범상하게 지나가겠습니까? 그래서 천군과 천사들은 하늘에서 노래했습니다.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 평화”라고. 들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찾아와 이 아기에게 찬송하며 경배하였습니다. 동방에서는 박사 세 사람이 별을 따라 찾아와 이 아기에게 귀한 예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정성껏 드렸습니다. 이 아기는 탄생할 때 천군 천사들이 찬양할 만하고, 목자들이 경배할 만하고, 동방 박사들에게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 예물로 받을 만한 충분한 품격과 신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기는 왜 남자와 상관이 없이 처녀에게서 나셔야 했나요? 남자와 상관하여 아기가 태어나면 그는 죄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처녀가 거룩하신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는 의인입니다. 그는 죄가 없습니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의인이라야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아기는 그러기 때문에 죄가 없고 죄인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인류의 구세주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구세주심을 믿는 믿음>
문제는 우리입니다. 이 아기의 탄생을 우리는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심과 이 아기의 처녀 탄생, 그리고 그 이름이 말한 대로 그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대상인 그 인격자를 내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신 분, 죄가 없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우리는 긍정해야 하고 그 아기를 마리아와 요셉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내 속에 정성껏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내 마음과 삶은 죄로부터의 구원이 감사와 감격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하늘의 평화가 모든 좋은 것의 넉넉함과 함께 채워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천국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아기는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시고자 내 마음과 삶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이, 더 큰 기쁨과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에게서 낳은 이 날을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야심 보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천국을 동경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낮은 곳에 하늘의 평화를>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처녀가 낳은 아기처럼 낮은 곳, 작은 자들을 하늘의 평화를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유대 땅에서도 가장 낮은 곳, 가장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 아기는 낮은 곳, 작은 자들을 찾아 하늘의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탄절은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지 물질적인 것이든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 소외 되고 그늘진 곳에 처한 자들에게 하늘의 평화와 함께 나누어 주고자 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계절인 것입니다.
불어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원 뜻은 ‘닭의 벼슬’과 ‘달걀의 노른자’입니다. 닭은 벼슬을 뽐내는 것이 사명이 아니라 달걀을 낳아 주인에게 드리는 일이 사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 단어를 가지고 귀족들의 약자들에 대한 도덕적 의무, 가진 자들의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시사하였습니다.
사실 이 단어는 처녀에게서 낳은 아기의 정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아기는 죽음의 골짜기인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고, 전쟁과 다툼이 치열한 세상에 하늘의 평화를 나누어 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 왕족입니다. 세상에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가 있고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처녀가 낳은 아기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낮은 곳, 작은 자들을 하늘의 평화를 가지고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소망하며>
처녀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기로 태어나신 계절, 이 절기의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평화는 우주적인 것이며, 세계적인 것이며, 어느 지역, 어느 인종, 어느 가정, 안 미치는 곳, 안 미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2008년 성탄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기쁨과 평화가 경제적 불황의 때를 맞은 온누리에, 전쟁의 포화와 테러의 공포가 아직까지 걷히지 않은 지구촌 곳곳에,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에게, 우리의 북녘 땅, 저 북한 사람들에게까지, 그리고 우리 주변 그늘진 곳에 처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히 성결 가족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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