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함 느껴도 본질은 매몰되지 말아야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쩈교회당이 가득한 로마
새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연중기획 ‘종교개혁 500주년 1년 전,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를 게재한다. 중세교회의 중심지인 로마를 비롯해 루터의 종교개혁 현장인 독일, 칼뱅의 활동 무대였던 제네바 등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곳에서 벌어졌던 사건, 종교개혁자들의 활동 등을 전한다.

▲ 베드로대성당
로마교회의 중심 베드로 대성당
로마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곳에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은 349년 처음 세워졌으며 1506년 율리우스 2세 교황에 의해 지금의 대성당이 새롭게 건축되었다.

멀리서 보면 대성당과 부속 회랑이 하나의 열쇠 구멍처럼 생겼다고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하신 말씀에 따른 내용이다.

테러 위협으로 강화된 검색대를 통과한 후 대성당에 들어섰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미켈란젤로가 25세에 만들었다는 ‘피에타’(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였다. 누군가가 훼손을 시도한 후 유리에 갇혀 버린 피에타 상은 마치 오늘 교회가 마주하고 기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성당 정면을 향해 가면서 성화와 교황들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 그들의 안식처(무덤과 관), 베드로의 청동상 등을 둘러본 후 강단 정면에 자리한 발타키노와 베드로가 사용했다는 나무 의자에 청동을 덧입힌 성좌 등을 둘러봤다. 대성당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본 많은 성당을 압도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 대성당의 모습을 본 후 로마를 죽은 자들의 도시, 거대한 기념물과 상징물에 갇힌 도시라고 일컫기도 했다. 거대한 석상과 건물, 화려함과 역동적인 회화를 전제로 한 로마 문화를 모르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이국적이었다.

하지만 고대 중세 유럽의  평민들은 성서를 구경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글을 몰라 성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에게 성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다양한 성화와 성인상, 그들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으로 교회를 장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고 성상과 성화를 통한 경건의 주입이 지나쳐 우상숭배로까지 나아갔다. 결국에는 종교의 타락은 계속 심화되어 중세교회가 면죄부까지 판매하게 됐고 이것은 종교개혁의 촉매제가 되었다. 면죄부 판매의 목적이 교황권을 상징하는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 확보에 있었다는 점에서 베드로 대성당 건축은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 라테라노대성당
중세 교황권의 상징 라테라노 대성당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이며 베드로 대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 1000여년 이상 교황 좌가 있던 곳이다. 중세교회의 상징이며, 종교개혁의 핵심 대상인 로마교회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었다. 성당 좌우 통로에는 12제자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들의 생동감있는 모습은 오늘 살아서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하는 듯했다. 성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자들의 성격과 특성을 고려한 조각 작품중 열쇠를 쥔 베드로와 검지 손가락을 치켜든 도마의 모습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 산스타 산스토룸
루터가 올랐던 계단 ‘산스타 산스토룸’
라테라노 대성당 앞 광장 옆에는 자그마한 건물에 산스타산스토룸(Sancta Sanctorum, 성스러운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 받을 때 오르내린 28개의 돌계단이다. 원래 예루살렘에 있었던 이 계단은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 순례를 마친 후 가져왔다고 한다. 나무로 덮힌 이 돌계단은 중세 시대 신부들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무릎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 고백과 함께 용서의 기도를 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한 계단에 한 가지 기도문을 외우는 그들의 무릎고행은 10여분 넘게 계속됐다. 계단 아래에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 무릎을 꿇고 짧은 기도와 함께 계단을 오른다.

옆 쪽 다른 계단으로 걸어갈 수 있음에도 무릎기도를 선택한 것은 500여 년 전 수도사로서 이 계단을 오른 루터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했음이다. 루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루터'에서 그는 계단을 오른 후 받아든 면죄부를 과감히 구겨버린다. 아마도 고행이나 하나님을 향한 육체적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상징하는 장면일 것이다.

곧이어 초대교회 순교자와 성도들의 지하무덤이 있는 카타콤(카타콤베산 칼리스투스)으로 향했다. 카타콤은 로마 시내를 벗어나 아피아 도로 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이다. 카타콤은 지하 7층 규모지만 안전 문제로 현재 2~3층까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지하 무덤의 복잡한 미로를 혼자 걷는 것은 불가능하고 가이드의 안내가 꼭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지하무덤 카타콤베
무덤 입구에서 카타콤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지하 무덤 입구에 들어섰다. 거대한 지하 공간의 통로를 따라 양쪽 벽에 수많은 사람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간신히 한 몸 누일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은 4~5층으로 겹겹이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묻힌 초기 로마 주교, 즉 교황들의 무덤이 있는 방에 잠깐 멈춰 섰다. 다른 무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큰 대리석관 뿐이었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한다고 말한다. 이곳의 주인들은 무덤 발견 후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그들의 명패가 남아 로마 제국의 눈길을 피해 이곳에 묻혔던 그들을 추억하고 있었다.

▲ 쿼바디스 도미네교회
‘쿠오바디스 도미네?’를 다시 물으며
근처에 세워진 쿼바디스 도미네교회에 들렸다.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인을 향한 탄압이 거세지자 성도들은 베드로에게 피신을 권고했다. 그런데 베드로는 로마를 떠났다가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가는 예수를 만난 후 다시 로마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순교의 길을 갔다.

그가 예수를 만났던 곳, 그리고 예수께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가십니까?)'라고 질문했던 곳, “나는 네가 떠난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달리려 한다”는 예수의 말씀에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던 곳, 바로 그것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입구 쪽 벽에는 이탈리아어로 교회의 유래에 관한 글이 새겨져 있다. 강단 오른쪽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림이, 왼편에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린 베드로의 그림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통로 뒤편에는 베드로가 서서 예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겼다는 발자국 대리석이 놓여 있었지만 쉽게 믿기 어려운 흔적이다.

‘쿼바디스 도미노 교회', 사도 베드로의 주검 위에 세워진 화려한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를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발걸음을 되돌린 작은 교회 중 예수님께 더 의미있는 교회는 어딜까?

중세 교회의 문제는 부패와 타락과 함께 개혁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낮고 깊은 지하 무덤을 마다하지 않았던 순수한 신앙과 ‘쿼바디스 도미네'를 일상 속에서 묻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되돌렸던 그 기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낮고 천한 신분에서 고귀한 존재로 대우받으면서 스스로 그 권위에 갇혀버린 교회, 그 교회는 갱신의 거대한 파도를 결코 거스를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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