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복음 신학화와 교육정책을 생각하며신학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신학'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탁상공론'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운위되는 경향성이 있는 듯하다. 도대체 ‘신학'이라는 것이 교회 부흥과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뿌리 깊은 의문이 존재하는 것에서 보듯, ‘신학'의 순기능에 대한 명시적 증례에 대한 성도들의 갈증은 여전하다.

더 나아가서, 이처럼 ‘신학'의 기능과 가치에 대한 막연한 의문을 넘어서서, 성도들은 ‘신학'이라는 것을 교회와 신앙을 타격하고 위축시키는 위험한 논리체계라고 규정짓고 ‘신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발동하기도 한다. 어쨌든, ‘신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의문을 가졌거나, ‘신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신학은 ‘백해무익'한 그 무엇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건조하게 전망하면, 신학화의 필요성은 고대 교회사를 통해서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이단들의 발호를 차단하고, 성도들을 보다 깊은 신앙의 차원으로 견인하기 위해서, 초대교회는 공의회를 통한 신조를 확정지었고, 정경화 작업에 착수했으며, 예전과 예식을 교리교육과 연계지어 지속가능한 신앙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했다. 이러한 신학화 작업을 통해서, 교회는 이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보다 논리적이고 명료한 신앙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물론, 신학은 결코 신앙일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을 보전하는 논리적인 안전장치가 되어 주었다. 신학은 결코 선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선포의 장(場)인 교회를 견고하게 지켜주고 세상과 이단의 어떠한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무탈하게 방어하는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공교회로서의 교회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교회 각자가 표방하는 ‘다름'의 신앙 논리 속에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핵심 신앙 대요를 찾아서 하나의 교리신조와 신앙고백으로 묶어 냄으로서, ‘하나의(una)의 교회'가 되게 했다.

논의의 각도를 좁혀서, 교단신학의 역할도 고대 교회사가 드러내주는 신학화의 장점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를 하나의 신앙과 교리로 묶어내 주는 역할을 하며, 이단과 불순한 의도로 성결교회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일체의 행위를 신학논리로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기독교대한성결회만의 신앙색깔을 분명히 천명하여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핵심 메시지로 전파할 수 있도록 신학적 뒷받침을 제공해 준다. 그러고 보면, 신학이 직접적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 전도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전도를 전도되게 하며, 신앙을 신앙되게 하는 데 철저히 봉사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중복음의 신학화는 매우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로 지금이야 말로, 사중복음 신학을 논의하고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수준 높은 웨슬리 학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의 만국성결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밝혀 줄 수 있는 연구가 상당히 무르익었으며, 동양선교회에 대한 협력과 이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견고해졌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역사를 공정하게 해석할 수 있는 학문성이 충분히 구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사중복음신학을 완성한다면 이는 우리 교단신학의 정립을 넘어서서, 정치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과, 문화신학으로서의 토착화 신학만을 가진 한국교회에게 한국적 복음주의신학으로서 사중복음신학을 더해주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서구의 신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민중신학, 토착화 신학 그리고 사중복음신학이라는 삼중구도로 한국교회를 이해함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본질과 장점을 보다 깊게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중복음신학은 반드시 우리 시대에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의 신학이다. 특히 사중복음 성결신학은 “성결 곧 성령세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명제는 많은 신학적 논의와 북미 부흥운동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하여 태생된 마치 압축파일과 같은 신학명제이자 동시에 결론이다.

오순절 성령운동이 한국 기독교계와 세계 기독교계를 강타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성령운동의 열매로서 놀랄만한 교회성장을 세계 기독교와 한국기독교는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남용과 부작용도 동시에 경험하게 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실망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 지점에서 세계 오순절 성령신학은 사중복음신학이 표방하는 “성령세례 곧 성결"이라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사중복음신학 사상을 수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순절 성령세례의 목적은 은사나 능력 이전에 성결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선물로 해석하는 사중복음신학과 대화함으로써 세계 오순절 성령신학은 새로운 장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중복음 재림신학은 종말론 중심의 신학흐름인 몰트만 신학과 맥클랜돈 신학과 대화할 수 있으며, 교회론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는 하우어바스와 요더의 신학적 흐름과 만날 수 있다. 사중복음의 치유와 회복의 신학개념은 ‘영성신학'과 ‘남ㆍ북 통일신학'의 수로를 타고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중복음 신학 속에 내재한 신앙경험과 신학논리는 오순절 성령신학은 물론, 교회론 중심의 신학과 종말론 중심의 신학, 그리고 통일과 치유의 영성신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신학화 작업은 결코 ‘탁상공론'이라거나 ‘백해무익'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우려와 염려의 대상이 될수록, 그리고 이 혼잡한 틈을 타서 이단이 처처에서 발호할수록, 교단신학을 점검하고 올바르게 정립하여 교회를 굳건히 지켜냄과 동시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웨슬리안 사중복음"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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