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살의 조로아스터교 현인 알타반은 구약의 예언을 연구하다가 위대한 왕의 탄생을 맞이하기 위해 아라비아의 멜카이 박사, 이디오피아의 발타살 박사, 팔사소의 케스팔 박사와 만나기로 하고 위대한 왕에게 드릴 청옥과 루비와 진주를 마련해 길을 떠났다. 먼 길을 달려갔지만 약속 시간보다 3시간 정도가 늦었고 다른 박사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 알타반은 부지런히 박사들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박사들 보다 사흘이 늦어 있었다. 도중에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히브리 사내를 외면하지 못한 탓이었다. 알타반은 아기 왕을 찾아 다시 애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속절없이 세월은 흘렀고 73세의 노인이 된 알타반은 위대한 왕을 찾아 예루살렘의 언덕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 그 길에서 알타반은 자신이 아끼고 아낀 마지막 보물 진주까지 포기해야 하는 사태를 맞았다. 노예로 팔려가는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진주를 속량전으로 내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다. 담이 무너지는 바람에 크게 다친 알타반은 자신이 속량한 소녀의 가슴에 안겼다.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알타반이 입을 열었다. “주님, 제가 언제 당신에게 먹을 것을,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저는 33년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얼굴을 본 적도 살펴드린 적도 없습니다.”

▨… 위대한 왕을 찾는 길에서 가진 보물을,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느라고 다 허비해버린 순례자에게 우리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알타반은 살펴드린 적이 없다고 말했을까. 그 주님의 말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아니, 지금도 그 말씀이 들려오기에 서방교회 야사인 제4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프린스턴대 교수 헨리 밴 다이크(H. van Dyke)의 윤색 이상으로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다.

▨… 본 회퍼(D. Bonhoeffer)도 그의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우리의 부끄러움을 깨우쳐 주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의 사귐에서 쫓아내는 것은 가난한 형제자매의 모습으로 문을 두드리는 그리스도를 추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귐’ 안에 교회가 있음을 모르는 아니, 모르는 체하는 목회자도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무 지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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