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 예수 그리스도 그 사내는 대학을 다닌 적도 없읍니다. 부귀를 누린 자도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적도 없읍니다. 그럴싸한 명사를 만난 적도 없읍니다.(중략)…그리스도는 가진 것 없는 당신 주제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줘야만 했읍니다. 처음엔 기적을, 그 다음엔 정신을 그 다음엔 영혼을, 그 다음엔 그의 전 생애와 주검까지도(후략)”-고정희의 시 ‘히브리전서’

▨… “예수께서는 오직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셨습니다. 타인을 위한 존재가 그리스도의 초월 경험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죽음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함, 그리고 편재가 유래합니다. 신앙은 예수의 이런 존재(성육신, 십자가,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형태를 한 하나님,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신 분, 이분이 초월적인 것에서부터 사는 인간입니다.”(D.본회퍼·옥중서간)

▨… 비록 서울시청앞 광장의 성탄트리에는 화려한 불빛이 점등되고, 사람들의 종종걸음을 세우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정경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전혀 성탄절같지 않다고들 푸념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우리의 경제상황이나 미래를 체념해버린 젊은이들의 어두운 얼굴 탓도 있겠지만 교회가 이 시대에 그만큼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산 증거가 아닐까, 염려가 커지고 있다.

▨… 성탄의 절기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다워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다만 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이땅에서 우리 시대 교회의 쇠락을 알리는 전주곡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무진의 안개’처럼 소리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현상에 대해서만은 한국교회가 대책을 세워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성탄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사실이 바르게 선포되어져야 한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시인 고정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끝없이 주어야만 하는 분으로 이해했다. 본회퍼는 오직 타인을 위한 존재이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분으로 이해했다. 오늘의 교회가 자신을 끝없이 주어야 하는,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비우는 존재로 자신을 이해한다면, 비록 성탄트리나 캐럴, 산타클로스가 없어도 성탄은 이 땅의, 이 시대의 희망일 것이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평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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