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학술세미나

성결교회 주요 사역자들의 삶과 사역을 조망한 세미나가 지난 11월 25일 서울신대에서 열렸다.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주관한 이날 세미나는 정빈과 김상준, 이명직과 이성봉 등 성결교회 부흥에 기여했던 주요 인물들의 삶을 조망하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신앙관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두 차례에 걸쳐 이날 세미나 발제 내용을 게재한다.

자치·자립 강조한 이명직 목사
이날 기조강연에서 박명수 교수는 ‘이명직과 동양선교회와의 관계’를 주제로 강의했다. 박 교수는 성결교회의 스승으로 불리는 이명직 목사와 동양선교회의 관계를 자치와 자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명직 목사는 “한국교회는 한국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는 성결교회의 자치와 자립을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동양선교회의 선교방침과 일치했지만 이들의 협력은 실패로 끝났다.

박 교수는 “1933년 한국성결교회는 자치를 선언했지만 동양선교회의 일관된 정책 부재와 부족한 지원, 한국성결교회 내부 갈등과 외부(일제)의 가혹한 현실 때문에 결국 자립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이명직 목사는 1940년 태평양 전쟁 당시 동양선교회가 한국에서 철수하자 또 다시 자립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한국성결교회는 결국 1943년 12월 재림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박명수 교수는 “동양선교회와 이명직 목사의 실패는 선교단체와 토착교회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이해관계로 사역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결교회 창시자 정빈 목사
정병식 교수(서울신대)는 성결교회 창시자 정빈 목사에 대해 강연했다. 1870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정빈은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를 익히며 동경성서학원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정 교수는 “동경성서학원에서 처음 접하고 배웠던 사중복음은 나중에 한국성결교회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정 교수에 따르면 정빈은 사중복음의 강조, 복음전도 우선주의, 개화사상을 추구했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신학적 사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글에서는 성경, 복음, 죄, 자유 등의 복음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정 교수는 “비록 그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지만 정빈은 성결교회 초대교역자였으며, 서울신대의 전신인 성서학원의 최초의 교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초의 교리서 집필한 김상준 목사
박찬희 박사(기둥교회)는 김상준 목사를 사중복음의 전파자로 설명했다. 김상준 목사가 집필한 ‘사중교리’는 1911년 3월 경성성서학원이 세워진 지 10년만 인 1921년에 출판된 우리 교단 최초의 교리서이다. 이 책은 일본 나까다 주지 목사의 사중교리보다 10년 먼저 출판되었다.

박 박사는 “사중교리 발간 후 이 책이 교과서가 되어 교단 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중복음을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가르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김상준 목사는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한국성결교회에 소개하고 전파하는데 크게 공헌했다”며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복음전도에 힘썼던 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