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정신분석 임상의와 자신이 죽었다고 망상하는 환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 의사: 죽은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지요?/환자: 그렇죠. 어떻게 죽은 사람이 피를 흘려요./의사: 그러면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가 나오는지 확인해봅시다. 손가락을 찌른 두 사람이 피를 보았다. 의사: 보세요. 당신은 살아있지요?/환자: 예, 선생님 제가 틀렸네요. 죽은 사람도 피를 흘리네요.(저스틴A. 프랭크·한승동 역, ‘부시의 정신분석’)

▨… 망상은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살아있는가, 이미 죽었는가의 판정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는 의사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념(?)을 말하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프랭크는 이 대화를 예화로 인용하였다. 현대 심리학에서 보면 망상은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었을 때 나타난다. 그 확실한 증상은 자신의 생각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질병으로서의 망상(delusion) 가운데는, 아내(또는 남편)가 바람을 피운다면서 감시자를 붙여놓고서는 종국에는 그 감시자까지 의심하는 의처(부)증 망상,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죽이려 한다는 피해 망상,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가 조종한다는 조정 망상 등이 대표적인 것들로 꼽힌다. 그러나 시대나 문화에 따라 나타나는 망상의 양상은 다양하다.

▨… 대량살상의 전쟁을 겪은 두려움 때문일까, IMF 같은 경제적 위기가 남긴 상처 때문일까. 근자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며 목청을 돋우는 과대 망상(persecutory delusion)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정치권에서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을 신격화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 이단들이야 어차피 망상의 부산물이니 가타부타할 이유가 없다. 교회 밖의 과대 망상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과대 망상에 빠져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는 ‘아니요’하고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다. “어둠의 자식들은 자기보다 높은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그러나 자기 유익의 힘을 알기 때문에 지혜로워 보인다.” 어둠의 자식들을 가려내는 이번 회기 재판위원들의 사심없는 판단과 공의로운 결정을 성결인 모두가 기대하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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