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목사
친분 있는 목사님의 여동생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번 20회차 이산가족상봉에 다녀왔다는 글이 온라인상에 포스팅되어 있었다. 글을 읽으니 먹먹함이 밀려든다.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동포애’ 또는 ‘이웃’의 자격으로 느껴지는 서글픔도 감당하기가 힘든 데, 당사자들의 아픔과 슬픔은 그 어떤 말로 표출할 수 있을까?

생이별은 참으로 잔혹하다. 신랑·각시가 혼인하고 신방을 차린 지 7개월 만에 6.25 전쟁이 터졌다. 달콤한 신혼의 단꿈과 행복감이 가시지도 않은 채 신랑은 인민군에 징집되어 끌려가고 말았다. 새색시는 아들을 홀로 낳아 키우며, 바느질과 농사일로 시부모를 봉양했다. 신랑과 처음 살던 집을 떠나지 않고 평생토록 낭군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재혼도 하지 않고 신랑을 기다린 지 65년째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색시의 기억에는 신랑의 모습마저도 가물 가물거린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65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신랑과 각시는 12시간을 허락받았다. 이렇게 남측 각시 이순규 할머니(85세)와 북측 신랑 오인세 할아버지(84세)가 재회했다. 아들인 오장균 씨(65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 처음 큰절을 올렸다. 다시 기약할 수 없는 짧은 만남에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몰라요. 너무 많이 울어 눈물이 다 말랐어요. 그래도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는 할머니의 고백이 민족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이번에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접하면서 ‘잔혹한 생이별’이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루속히 통일이 이루어져서 잔혹한 생이별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과 가족이 짧은 여생만이라도 함께 할 기회가 더는 지체되면 안 된다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 버리면 살아서 볼 기회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대단한 민족이고, 위대한 민족이다. 반만년 역사 동안 끊임없이 침탈과 상실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내고 지금의 한국이 있게 했다. 또한 복음이 들어 온 지 100여 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예배자들이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장·단기 선교 사역에 비전을 품고 열방을 향하여 복음 들고 나가는 거룩한 민족이 지금의 한국이다. 이제는 통일 한국의 염원이 이루어져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어우러져 세계선교를 향한 위대한 역사가 우리 민족을 통해 시작되기를 기도한다.

통일 한국의 때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다고 감히 기대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도 있다. 먼저, 이번 20차 이산가족상봉행사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 있다. 북측은 그동안 ‘이산가족 만남’이라는 카드를 통한 정치적 의도가 보였지만, 이번 상봉은 휴머니즘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강했다는 특징을 보았다. 이제 화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해본다.

둘째, 통일 한국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고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에 ‘통일세’라는 말이 등장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 한국을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는 점 등이다. 즉,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통일 한국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대중의 사고 속으로 스며들고 녹아들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셋째, 한국의 국력이 극도로 신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해방 이후 국력이라는 것을 전혀 가져 보지도 못한 채로 열강들에 의해 강제로 분단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어떤 열강에 의해서도 쉽게 좌지우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분단은 외세에 의한 것이었지만, 통일은 남북 당사자들의 의지에 달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희년을 통해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선교 한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성도들의 기대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남과 북 성도들의 적셔진 눈물이 하나님의 결재를 기다리는 잉크가 되리라 기대한다. 통일 한국은 민족의 생이별 아픔이 치유되고, 더 나아가 세계 복음화를 향한 전초기지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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