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길

이판일은 순교자적 신앙 기질이 있다. 일본제국주의 말 성결교단이 해산을 당해 교회당을 빼앗기고 교역자와 교회 중진들이 투옥되는 등 성결교회 박해시기에 이판일은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목포경찰서로 압송, 고등계 형사의 위협과 회유를 받았다.

“이판일 선생, 당신 목숨은 단 하나요, 당신에게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깊이 생각해보시오.”, “이 선생, 그까짓 절 한번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단 말이요?”, “우리기독교는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참배할 수 없소이다.”

형사는 이판일의 완강한 태도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못 참고 온갖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마구 치고 때려 이 집사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판일이 그런 와중에도 싱글벙글 웃자 형사는 이성을 잃고 더욱 악이 바쳐 펄펄 뛴다.

바로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형사부장이 이판일이 피투성이 얼굴이 된 채 싱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굳어지면서 취조형사를 질책한다. “아니, 저자가 미치지 않았는가! 누가 이자를 미치게 하라고 했나?” 신경질적이고 거친 질책에 형사가 굽실거리며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너무나 악질적인 놈이라서…” 형사부장은 퉁명스럽게 “저 미친 자를 데리고 뭘 하겠나! 즉시 내보내!” 그리고는 휑하니 나가버린다.

이판일이 생각잖게 석방되어 문을 막 나서자 장남 이인재가 그를 맞는다. 인재는 부친의 처참한 모습에 말문이 막혀 뜨거운 눈물만 흘린다. 그러나 부친의 석방에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가 솟구쳤고 석방된 연유가 매우 궁금했다. “아버지, 어떻게 석방되셨습니까?” 이판일은 아들의 물음에 밝은 미소를 짓고 나서, “취조형사가 구타할 때, 나 같이 비천하고 못난 인생이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기쁘고 영광스러워 싱글싱글 웃었더니 속도 모르는 위인이 미친 줄 오해하고 내보내주더라.”

진리교회가 날로 부흥하는 가운데 1950년 6·25전쟁으로 9월 24일 공산치하가 되어 교회 간판은 땅바닥에 나뒹굴어졌고, 교회 출입문은 대못으로 봉쇄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출입을 금함’이라는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붙었다. 이판일 형제는 성도들과 밀실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되어 목포 정치보위소로 압송되었다.

얼마 후 험상궂은 사나이가 거친 음성으로 소리친다. “야, 너희 두 놈, 이리 나와!” 순간 두 형제는 ‘최후의 순간을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를 따라 이층 방으로 들어섰다. 부장이라는 명패가 있는 책상에 30대의 훤한 인물이 앉아 서류를 들춰보고 있다.

부장은 한참이나 서류를 들여다본 후 두 사람을 보면서 이름을 묻는다. 각기 이름을 대자 부장은 이 장로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혹시 장로님이 아니신가요?” 부드럽게 묻는다. “그렇소이다. 진리교회 장로입니다.” “장로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장로님을 일찍이 뵌 적이 있지요. 장로님 네는 예배를 토요일에 드립니까, 일요일에 드립니까?” “예. 우리교회는 주일에 예배드립니다.” “그런가요? 예배는 토요일에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리고는 부장은 부하에게 “이봐, 이분들을 곧 석방해드려!” 그 정치보위부장은 안식교 교인으로 짐작했다.

정치보위부서에서 석방된 이판일 형제는 목포에 있는 장남 이인재의 집에서 며칠을 보낸 후 주일을 맞아 이인재 집사와 함께 동명동교회(현 상락교회)를 찾았다. 교회 정문에 인민군보초가 서있었다. 그러나 이판일 형제는 당당하게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강단 앞에서 무릎 꿇고 소리 높여 기도한 후 태연하게 나왔다. 보초는 위풍당당한 그들에게 압도되어 부동자세였고 이인재 집사는 감히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었다. 그들은 3일 후에 장남 이인재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임자도로의 귀향을 서둘렀다.

이봉성 전도사가 선착장에 나와 귀향을 극구 만류했다. “지금 폭도들이 대대적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데 돌아가시면 화를 당하십니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귀향의지를 굽히지 않자 이 전도사도 동행할 뜻을 말하자 이 장로는 깜짝 놀라며, “전도사님은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은 분입니다. 딴 생각마시고 앞날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 전도사의 동행을 뿌리치고 승선하여 배가 가물거릴 때까지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이 전송이 천국으로 가는 전송길이 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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