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우드 박사 강연 후기

이번 사중복음 국제학술제에서 강연한 우드 박사를 통해서, ‘오순절 성화’(Pentecostal Sanctification)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존 플레처(John Fletcher)의 사유가 개진되어 온 과정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성령세례를 완전성화로 해석하려 했던 플레처의 일관된 행보에서 볼 때, 웨슬리의 성령세례에 대한 견해는 변형과 수정을 겪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초기 웨슬리의 저서가 보여 주었던 성결에 있어서 오순절 성령세례의 중요성이 후기 웨슬리의 작품 속에서는 명증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웨슬리가 보여준 오순절 성령 사건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가 후기 웨슬리에게서는 은닉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웨슬리 해석에 우드 박사는 이의를 제기한다. 우드 박사의 논지는 후기 웨슬리도 오순절 성령세례의 중요성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플레처의 저서를 감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플레처가 주장하는 성령세례에 있어서 웨슬리가 주저했던 지점은, “성령을 받음"(receiving the Holy Spirit)이라는 개념에서이다. 이 표현은 자칫 인격 되신 성령님을 물품이나 물건으로 오인할 소지를 충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receiving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수정된 맥락에서 웨슬리는 플레처의 성령세례 개념을 수용할 수 있었다.

성령세례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성령세례를 누가 이야기 하고 있는가라는 것도 웨슬리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동시에 성령세례로서의 완전성화가 성결의 점진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오직 성결의 즉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성으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신학적 염려가 작용한 것 같다.

이는 영국 모라비안 교도들과 결별하게 된 원인에서도 미루어 유추할 수 있다. 칭의 곧 성결이라는 저들의 주장 속에 신앙의 단계성(gradualism)이 소실된 것을 파악하고 교제를 단절하고, 독일 모라비안 교도들과 크리스찬 데이빗(Christian David)을 만나서 신앙의 단계성을 다시금 확신한 웨슬리의 신앙 여정을 통해서 볼 때, 오순절 성결에 대한 웨슬리의 심사숙고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웨슬리의 목회적 안목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드 박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드 박사의 강연은 웨슬리 신학의 해석 경로에 대한 만국성결교회의 입장을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웨슬리의 ‘완전성화’(entire sanctifi cation)는 ‘사랑에의 완전’(Christi an perfection in love)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우드 박사의 강연은, 웨슬리의 ‘완전성화’가 ‘성령세례’(baptism of the Holy Spirit)로 등치될 수 있다는 사유가 웨슬리의 신학 속에 숙성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거했다. 냅(Martin Knapp)과 리스(Seth Rees)의 만국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성화론을 ‘성결 즉 성령세례’라는 맥락으로 극대화하는데, 이러한 만국성결교회의 성결론의 해석 흐름은 동양선교회(OMS)를 경유하여 기독교대한성결교회(KEHC)의 핵심교리로 선포된다.

성결을 성령세례로 이해한 만국성결교회는 웨슬리안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Pentecos talism)을 잇는 가교 역할을 미국교회사에서 성실히 수행했는데, 이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신학적 방향성을 비추는 영롱한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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