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불’을 위협하는 바람과 물오래 전 리차드 박스터(R.Baxter)는 열정이 식어버린 설교자에 관해 이렇게 한탄한 바 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설교하는 목사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아아, 슬프다. 우리가 너무나 힘 없이, 너무나 부드럽게 설교하기 때문에 잠자는 죄인들은 들을 수가 없다.” 이러한 옛 설교자의 한탄은 현대 강단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종종 그 능력있는 진리의 말씀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선포됨으로 불붙지 않은 다이너마이트처럼 회중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설교에서 열정은 참으로 설교의 사활을 거는 중요한 요소이다. 스펄전은 이것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영혼들을 얻는 데에 성공하기 위해 목사에게 가장 필수적인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열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두 번, 세 번 반복한다 해도 저는 동일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설교자의 딜레마는 불타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불붙지 않는 답답한 가슴일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언제나 여기가 문제야. 여기가”하며 한탄했다는 옛 설교자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식어버린 가슴’, 그것이 많은 현대 강단의 아픔이요, 교회의 슬픔이다.

그렇다면 설교 열정의 부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과 연관있는 듯 하다.

첫째는 설교자의 육신의 쇠약함이다. 자칫 우리는 식어버린 열정을 주로 설교자의 영성과 결부시켜 이해하기 쉽지만 의외로 설교자의 육체적 요인, 몸 상태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밤잠을 설치거나 충분한 건강관리가 되지 않아 설교자가 쇠약해지면 설교의 열정 또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로뎀나무 아래 지쳐있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먼저 먹이셨을 것이다.(왕상 19:6) 따라서 설교를 앞두고 할 수 있는 한 충분한 기도와 휴식으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활력있게 진리를 선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는 과중한 목회 업무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목회 현실상 반드시 마무리 해야 하는 다양한 심방과 상담, 행정을 설교보다 우선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목회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탈진한 상태로 서재에 앉아 예배시간에 가까워서야 겨우 마무리된 설교원고를 들고 강단으로 올라간다면 대포처럼 쏘아올려야 하는 마지막 불쏘시개가 이미 남아있지 않게 된다. 따라서 분주한 목회 전반의 일정을 재검토하고 설교 준비 시간을 확보하던지 업무를 조정하고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는 냉랭한 회중의 반응이다. 열정적인 설교 사역에도 회중의 마음밭이 강하고 단단하여 설교의 반응이 냉랭하거나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지 않으면 설교의 열정 또한 상처 받기 쉽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회중의 화답과 격려가 필요하다.

넷째는 설교 전 사모와의 관계이다. 의외로 설교를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사모와의 작은 언쟁이나 부부싸움’으로 마음이 상하여 그 날의 설교를 망치는 설교자들도 있다. 따라서 예배 전 1시간은 ‘사탄이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시간’으로 설교자와 사모가 피차 경계하고 주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은 한 줄기 바람에도, 물 한 바가지에도 쉬이 꺼지며 가만히 두어도 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불을 위협하는 바람과 물을 경계할 뿐 아니라 가슴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용광로에서 막 꺼낸 진리의 석탄과 구령의 불쏘시개를 가슴에 공급해야 한다.

‘불같은 성령님, 우리로 언제나 진리의 불로 불타 오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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