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4일 경기도 파주에서 북한이 설치한 목함지뢰 폭발로 인해, 군인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우리 쪽에서 확성기 방송을 통해 심리전을 재개하면서 남과 북의 긴장은 갑자기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확성기 인근지역에 고사포와 직사포를 발사하였고, 이에 우리 쪽에서도 포격으로 응사하며 최고수준의 경계태세로 들어갔다. 일촉즉발의 전쟁발발 직전까지 갔던 상황은 다행히 3일 동안의 피말리는 고위급 접촉으로 25일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어렵게 북한과 합의한 적십자 실무 접촉과 이산가족 서신교환과 상봉은 모든 국민과 더불어 한국의 기독교인 모두가 기도하며 바라던 내용이었다.

다급했던 8월을 지내고 9월 초에는 대통령이 중국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며, 공산정권인 중국에 대한 외교적인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60여 년 전에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섰던 천안문 성루, 그 자리에 우리의 대통령이 중국의 최고지도자와 함께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았다는 것은 외교적인 영역에서 더 이상 이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정부가 이렇다할 뚜렷한 대북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고 냉전시대처럼 다시 싸늘하게 얼어가던 차에, 남북관계의 대화가 시작되고 중국, 더 나아가 러시아와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주목하고 기도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미국과 특히 군사 재무장과 극우정책으로 일관하는 일본을 의식해야 한다. 이제는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자세로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이나 미국, 또는 일본이나 러시아가 아닌, 남북 당사자들 사이에 서로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인정하는 만남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둘째, 이제 더 이상 이념은 외교적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공산정권의 군대를 사열하는 시대임을 기억한다면, 북한에 대한 입장도 이념의 틀을 넘어서는 보다 실용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교회에서도 북한에 대한 시각을 냉정하게 교정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공산국가는 교회를 박해하며, 교회를 박해하니 상대방 정권은 당장에 무너져야 한다”는 논리는 앞으로 정부가 북한에 대한 자세를 취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진보적인 정책의 요구나, 전향적인 자세의 요구를 단순히 ‘용공’, ‘종북’이라는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용어로, 교회가 나서서 매도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이념논쟁의 온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남북관계가 어찌할 수 없이 냉각되어갈 때, 북한에 대한 쌀지원 사업으로 민간차원의 접촉을 열었던 한경직 목사님의 선구자적인 용기를 현재의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때이다. 실제로 남북관계가 냉각된 시기에도, 교회를 통한 민간차원의 교류가 계속되고 있음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정부는 밑도 끝도 없는 구호식의 방법으로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태도를 멈춰야 한다. 그저 말로만 ‘관계개선’이나 ‘대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사학으로 자신의 행동을 다한 것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북한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알아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과의 최대공약수를 만들어가는 정부의 노력을 지켜볼 시기이다.

남북관계가 호전된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나 또는 정치적으로 편파적인 사정의 칼날을 휘둘러서는 안된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약자들의 억울함과 아픔에 귀를 닫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남과 북 모두가 축하하던 그 해에, 북한에서는 영구집권을, 남한에서는 유신체제를 만들어냈던 아주 몹쓸 과거를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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