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사학, 약초학교

대신농업고등학교의 특징은 전국 각지 원근 각처에서 학생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이는 교장선생님의 정신과 교육철학, 그의 명강의, 유명한 약초원과 훌륭한 교사들 덕분이다. 임세흥 장로의 후생학 강의는 특히 유명했다.

“선생님은 한국교육과정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후생(厚生-행복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과목을 만들어 직접 강의하셨다. 중심 내용은 덴마크개척정신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내용은 광범위하다. 한국인이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시면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라고 강조하였다. 선생님의 인생관, 신앙관이 이 시간에 다 나왔고, 약초식물강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시간이었다.”(신민교 박사 증언)

학생들은 학교를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 땀의 가치를 배우고, 신학문 학습과 함께 농사 실습으로 산교육을 받았다. 또, 임 장로의 약초강의로 학생들은 농촌의 야산에서도 약초를 찾아낼 수 있었고, 봄가을소풍에는 전교생이 총동원되어 근처 우두산, 고래산, 용문산이나 멀리 소백산, 월악산, 치악산 등 유명 산에서 약초채집을 답습했다. 학생들은 약초 판별실력을 경쟁하며 채집에 열중했고, 상품으로 쌀 한 가마나 돼지새끼 한 마리 등이 걸렸었다.

학교 약초견본포에는 학생들의 손으로 가꾸는 약초가 자라고 있었다. 제1~5약초원은 약초명과 약리작용이 담긴 표지판을 세워 산 교육장이 되었다. 임 장로는 여기서 학생들과 함께 약초연구를 계속하셨다. 약초원은 실습지인 동시에 정원이며 휴게소였다. 연세대나 이화여대의 약대생들이 용문산, 고래산에서 대신학생들과 함께 약초채집실습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학생들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서울대 약대 교수들이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약초원을 방문하여 학습하기도 하였다.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인 동양의약대와는 자매결연을 맺고 약초재배연구를 공동으로 하였으며, 졸업생들이 동양한의대에 진학하게 되자 약초학교라는 이미지와 함께 학교의 명성은 전국에 널리 퍼져 우장춘 박사도 이따금 방문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대신중·고등학교
농업학교로서의 명성은 시대적인 변천과 함께 재도약을 해야 하는 시점에 임 장로의 사위 박치주 장로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박치주 교장은 대기업의 간부에서 교육자로 투신한 후, 29년 동안 학교발전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이 학교는 1973년 인문계고등학교로 바뀐 후 명문사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99년, 임세흥 장로의 장남 임희창 교사가 제5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임 장로는 인하대와 연세대대학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이다. 그는 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 재료공학자 한동대 김영길 총장을 만나 신앙적 사제 또는 동료지간의 교제를 나누며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40대 중반의 임희창 교장은 취임 후, 50여 년 전 선친께서 척박한 이 땅을 보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였듯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던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자신과의 갈등과 씨름을 마치고 교육자로 헌신하였다. 학생들을 만나 저들의 짓눌린 가슴과 아픔, 숨겨진 꿈을 보며 함께 웃고 우는 교육자로 거듭난 것이다.

불철주야 비전과 현실 앞에 몸부림치며 연구하고 기도한 결과 임희창 교장은 난관을 극복하고 젊음과 지성, 신앙을 무기로 학교를 현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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