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창순 장로(서울중앙지방‧장충단교회 명예)
빌립보서 2장 3~4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겸손을 생활화하면 그것이 곧 나의 기쁨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겸손과 교만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말입니다. 사전에는 겸손을 ‘남 앞에서 제 몸을 낮춤’으로 정의하였고 교만은 ‘겸손하지 않고 뽐내어 방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과 교만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단계, 두 번째는 말로 나타내는 단계, 그리고 세 번째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겸손과 교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출생부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그의 한 평생은 겸손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른편 뺨을 치는 사람이 있으면 왼편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벗어주라”(마 5장 39~40)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시는 겸손함도 보여주셨습니다.(요 13장 4~5절)

요즘 일부 대학에서 스승의 날에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말은 대단히 고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은 사람의 신체 중 최하위의 부분으로서, 주인의 무거운 체중을 짊어지고 험난한 산꼭대기, 깊은 골짜기까지도 마다 않고 가장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반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더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씻는 순서도 맨 먼저 손을 씻고, 얼굴, 몸, 마지막으로 발을 씻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잘 한 일이 있어도, 남이 알아서 칭찬을 해주어야지, 자화자찬하면 그 잘한 일이 희석되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많이 배워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만, 차라리 못 배워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그 자체가 교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특히 한국인에게 해당하는 말로서 그중에서도 믿음 생활하는 교회에서 연말연시에 새로운 직분을 맡긴 때 당사자는 한사코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겸손이 아닌 교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손을 비비면 비굴하게 아부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약자를 무시하면 자기가 아무리 강자라도 똑같이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파트나 사무실 승강기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한 마디 정도 인사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쑥스럽다면 간단히 고개 숙여 눈웃음만 보내도 상대방은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인간 처세의 비결 중 하나는 자기 과시나 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 누구 앞에서나 보다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