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환 목사(서울동지방·새시대교회)
장녀 고 이지선 판사가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 민사 사건을 두고 부장판사는 원고 패소로 끌고 갔는데 당시 우(右)배석 판사(합의 재판부의 오른쪽 판사)였던 딸(이 판사)은 원고 승소로 끌고 갔다.

부장 판사가 “원고 패소로 판결문 써와”라고 했지만 딸은 원고 승소 판결문을 썼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부장님이 이 판결문을 보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깨닫게 해 주세요”라고. 그리고 그 내용을 나에게도 알리면서 “아빠, 부장 판사님이 판결문을 꼭 읽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다.

판결문을 가지고 온 딸에게 부장 판사가 물었다. “원고 패소지?” “한 번 읽어 보세요” 보통 때 같으면 그의 성격상 읽어보지도 않고 내 던질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읽었다.

그리고는 이 판사가 옳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아울러 자존심을 접고 판결문 그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부장 판사는 내심 당황했다. 자기 같으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데 남자도 아닌 여자가 상관의 명을 불복하면서까지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그 담대함에 쇼크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판사를 불러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자기도 집사이고 이 판사도 집사인데 자기는 성령을 받지 못해 그런 용기가 없고 이 판사는 성령의 사람이어서 그런 담대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물었다. “이 판사 나도 성령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지?” 이 판사가 “우리 부모님께 안수 기도 받으면 받을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장 판사가 정말로 나와 집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청한 것이다. 성령을 받고 싶으니 기도 좀 해 달라고….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부장 판사가 성령을 받도록 꼭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약속한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 부부는 부장 판사의 집을 방문했다. 부장 판사는 무릎을 꿇고 부인과 함께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찬송하고 뜨겁게 말씀을 전한 후 통성 기도에 들어갔고 기도 중에 안수했는데 성령이 임했다. 두 분 모두 방언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부장 판사의 지병(持病)까지 치료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기쁨에 넘친 그는 “목사님 어떻게 이 은혜를 지속할 수 있죠?”라고 물었다. 나는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방언 기도를 한 시간 이상씩 기도 하세요”라고 말했다.

바로 그 부장 판사가 지난 6일 딸의 빈소를 찾아왔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부장 판사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제 신앙이 180도 바뀌어 감사와 기쁨 속에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는 오후 내내 봉사했다. 몸소 음식물을 나르고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기도 하면서…. 그리고 지금은 변호사 개업을 했노라고 했다.

이 판사는 조정과 화해의 명수였다. 기독교 단체의 쉼터 부지를 둘러싼 논쟁을 함께 기도하자면서 그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움직여 조정에 성공했고, 목사 간의 분쟁은 “복음을 전파할 사명자께서 이렇게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전도 길이 막히니 십자가의 희생을 생각하고 화해합시다”라고 호소함으로써 눈물로 회개하며 화해하도록 한 것이다.

빈소를 찾은 수많은 선후배 동료 법관들은 그렇게 친절하고 일 잘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를 연발하는 판사는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판사는 “허리가 아프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언제나 좌중을 환하게 했어요. 재판을 방청한 적이 있었는데 피고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할 수 없었어요. 그러니 과로할 수밖에 없지요. 저는 이 판사와 함께 근무 할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비통하십니까? 제가 주목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법관이었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빈소를 찾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짧지만 보석과 같은 족적(足跡)을 남긴 딸의 일생을 평가한 말로 들렸다.

“좀 더 있다 데려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되뇌어 보지만 우리보다 생각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승복할 따름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의롭고 선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을 머금고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주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딸을 부르신 줄 믿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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