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도 장성 땅에 가면 박수량(1491~1554)의 백비를 만날 수 있다. 박수량은 조선왕조 명종 때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그의 가난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 주어야 했다. 비석에 글을 새겨 그의 청백한 삶을 기린다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다하여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은 백비를 세웠다고 한다. 한 개의 돌 백비가 두고두고 박수량의 인품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 문순공 퇴계 이황(1501 ~1570)은 성리학의 대가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지만 그의 인격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서 숭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일상에서 검소함을 실천하여 세수 그릇으로 돌그릇을 쓰고 자리와 의복도 풀이나 베로 된 것으로 자족하였다. 출입시에는 칡으로 삼은 신에 대로 만든 지팡이를 짚었다. 그의 인격이 대성한 학문의 체계보다는 그의 삶에서 우러났던 것이다.

▨…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성결의 향기가, 구호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올 때라야만 진짜라는 사실을, 요즘의 성결인들은 까먹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은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성결을 외치고, 성령의 역사를 외치는 사람들이 교단 안에 그렇게 넘치는데도 성결의 향기는 약화되기만 하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 성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지 성결인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 제109년차 총회는 걸핏하면 사회법을 의지하려는 성결인(?)들의 행태를 막기 위한 결의를 채택했다. 교단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회장과 총무, 임원회를 상대로 사회법에 제소할 경우 재판위에 회부하여 징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의를 비웃는 사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전 총무가, 무슨무슨 전 위원들이, 무슨 목사가 교단을, 총회 결의를 줄지어 사회법에 제소하고 있는 것이다.

▨… 교단에서 성결성이 조금이라도 향기되어 우러난다면, 제소자들이 교단의 성결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우리의 몸가짐(持身)은 조금은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몸가짐은 마음가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교단이 그토록 강조하는 성결성이 정작 성결인들의 몸가짐(人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자조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를 주님은 어떻게 받아 주실까. 성결성과 인격은 애초부터 연관성이 없는 것인지 묻는다면…. 누군가는 답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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