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성결신문은 지령 1000호 및 창간 25주년을 감사하는 예배를 지난 7월 2일 총회본부에서 드렸다. 근자에 우리 교단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렇게 성황을 이룬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관심과 격려가 뜨거웠던 자리였다. 남전도회의 소식지로 출발했던 한국성결신문이 이제는 교단 전체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만큼 성장했음을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성결신문이 정론지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설교자뿐만 아니라, 축사, 격려사 담당자들도 모두 한국성결신문이 교단과 한국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정론지가 되기를 당부하였다. 참석자들 중에 그 누구도 한국성결신문의 역할과 기능을 교단의 소식지로만 국한하도록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 한국성결신문의 교단 내에서의 위상이, 힘이 그만큼 커졌음을 반영하는 당부일까. 한국성결신문으로서는 지령 1000호에 그와 같은 인식이 하나되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현실에서는 힘에 부치는 요청이 아닌가 싶어 송구스럽기도 하다. 촘스키(A. N. Chomsky)는 조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기자들의 생리를 아프게 비꼬았었다. “기자들은 기자 일은 정직하게 하고 있지만 실은 권력에 종속되어 있지요.”(촘스키·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 한국성결신문의 자긍심은 이 신문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교단지라는 사실에 있다. 동시에 이 신문의 한계도 교단지라는 데에 있다. 교단의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론의 잣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자기 모순의 생래적 한계를 ‘스티그마’로 안고 정론의 사명을 다짐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알아주는 이 있을까, 이 모순의 아픔은 어쩌면 영원히 극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는 이런 대사가 기록되어 있다. “당신은 자기의 숨은 가치를 눈에다 비춰 볼 그런 거울이 없어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없소. (중략) 내가 당신의 거울이 되어 당신이 모르는 당신 자신을 보여드리지요.” 정론지로서의 역할은 불가능한 가능성일런지도 모르지만, 모든 성결인들에게 거울의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우리의 다짐은 혜량하여 주시기를 애독자 여러분께 감히 부탁드리고자 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